전문가 "초기 단계 위험성 판단부터 제대로 해야"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남대문경찰서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스토킹하던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피의자 전주환을 21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지난해 '김병찬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날 오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혐의를 받는 전주환(31)을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지난 19일 신상이 공개된 전주환은 송치 과정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주환은 지난 14일 오후 9시쯤 사전에 준비한 흉기로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20대 여성 A씨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를 스토킹 해오던 전주환은 재판에 넘겨져 중형을 구형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스토킹 피해를 신고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옛 연인을 살해한 김병찬 사건 등을 계기로 '스토킹범죄 대응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그 결과 초기 단계부터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는 '스토킹범죄 현장대응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김병찬 사건 당시 피해자가 사건 당일까지 총 6차례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범행을 막지 못해 논란이 됐다. 사건 당일 피해자가 스마트워치 버튼을 눌러 경찰을 긴급 호출했으나 골든타임을 놓쳤다.
경찰은 김병찬이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 통보 이후 범행 도구와 방법 등을 인터넷 검색하는 등 보복 심리가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형법상 살인죄보다 형량이 높은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전주환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해자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고소한 뒤 전주환은 재판에 넘겨졌고, 선고 예정일 전날인 지난 14일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현재까지 계획범죄·보복범죄라고 보고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김병찬이 지난해 12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
결국 김병찬 사건을 계기로 내놓은 '스토킹범죄 현장대응력 강화대책'이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경찰청은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해 모든 스토킹 사건 초기 '위험경보판단회의'를 열고 '주의''위기''심각' 3단계로 위험성을 분류해 적극 개입한다고 밝혔다.
위기 단계의 경우 스토킹범죄가 1회 이상 있고 최근 5년 이내 신고·수사·범죄 경력이 2회 이상 있거나, 상해·폭행·주거침입 등 직접적인 물리력 행사가 있는 경우 중 1개가 해당하는 경우다. 위기 단계는 현행범체포·잠정조치 4호 등 신병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전주환을 고소한 뒤 한 달가량 신변보호 조치를 받다 해제됐고, 지난 1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거듭 고소했는데도 경찰의 '조기경보시스템'에서 누락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경찰청에 유선으로 확인한 결과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부경찰서는 전주환이 피해자를 직접 찾아오지 않는데다 문자 메시지만 보내는 등 심각하지 않다고 보고 위험경보판단회의를 열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내놓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는 검찰과 사건 초기부터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불송치 결정한 사건을 포함해 스토킹 사건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대책 등을 내놓았다.
법무부가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 조항 삭제 방안을 검토하면서, 경찰청은 여러 의견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9일 "잠정조치 신청을 해도 법원 결정까지 2~5일 공백이 있어 선유치하고 사후 판단을 받는 '긴급잠정조치' 신설 의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후약방문으로 사건이 터졌을 때 임시 대책만 내놓고 있다. 실효성을 갖추려면 내부 훈령 등 법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 위험성 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다. 체크리스트도 현장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반면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는 "대책을 내놓는 단계에서 입안자들이 현장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며 "현장도 정당한 법 집행인데 과잉 대응에 책임 부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시행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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