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사고뭉치 청소년의 '청바지 대장님'…아이들은 변했다
입력: 2022.09.19 00:00 / 수정: 2022.09.19 00:00

'일진들의 친구'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 인터뷰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주현웅 기자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주현웅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9년 전인 2013년 인천시교육청이 주최한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우수 사례’ 시상식. 지역의 학교와 교육지원청 소속 직원들이 연이어 호명되던 중 사람들을 유독 미소짓게 한 수상자가 단상에 올랐다.

인천남부경찰서 학동지구대 순찰지원팀 서민수 경사. 수상자 중 유일한 경찰관이었지만 인천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는 ‘청바지’(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 동아리의 ‘대장님’으로 불렸다. 서 경사는 "아이들과 그저 ‘이런저런’ 놀이를 즐겼을 뿐"이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반에서 5등, 10등이면 훌륭한 성적인데도 자존감 낮은 아이들이 많아요. 쉼 없이 공부하고 높은 성적만 좇다 결국 지치고 말죠. 저는 이 친구들이 정말 해보고 싶어 하는 활동들을 조금 뒷받침해줬을 뿐이에요. 그러자 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 사회를 밝게 비추던지요."

이런 마음이 여전할까. 최근 <더팩트>와 만난 그는 학교폭력 등 소년범죄를 연구하며 일선 경찰 지도까지 맡은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이 돼 있었다. 경위로 진급했지만 여전히 ‘청바지 대장님’으로 남아 있다는 게 더 큰 자부심이라고 했다.

서민수 교수는 한해에 개인 돈 약 1000만 원씩 써가며 청바지 동아리를 운영해 왔다. 사진은 청바지 소속 학생들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플래시몹(왼쪽)을 진행한 모습과 단체로 프로야구 경기 관람(오른쪽)을 하는 모습./청바지 제공
서민수 교수는 한해에 개인 돈 약 1000만 원씩 써가며 청바지 동아리를 운영해 왔다. 사진은 청바지 소속 학생들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플래시몹(왼쪽)을 진행한 모습과 단체로 프로야구 경기 관람(오른쪽)을 하는 모습./청바지 제공

그는 2013년 ‘무작정’ 청바지 동아리를 만들었다. 사춘기인 아들의 소소한 일탈을 보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지구대에서 일하던 그는 길을 걷는 청소년들에게 다짜고짜 ‘건전하고 재밌게’ 놀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면 가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다녔다고 한다.

그 결과 약 150명의 중고교 청소년들이 모였다. 서 교수는 한해에 개인 돈 약 1000만 원씩 써가며 동아리를 운영해 왔다. 아이들은 번화가에서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플래시몹이나 연극 등을 진행했고, 유명세를 타다 프로야구 경기에 공식 초대돼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서 교수의 연구실은 늦은 밤까지도 불이 꺼지질 않아 경찰인재개발원의 등대로 불린다. 단연 연구 활동이 이유지만 꼭 그뿐만은 아니다. 새벽 2시쯤부터 진짜 일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를 가하거나 당한 청소년들의 상담 연락이 가장 많이 오는 시간대다.

청바지를 이끌며 여러 학생과 어울리다 보니 범죄를 저지르는 등 사고뭉치 청소년들도 알음알음 알게 됐다고 한다. 서 교수의 역할은 그런 청소년들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그저 친구처럼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이다.

"새벽에 문자나 통화가 온다고 해서 힘든 내색을 하진 않아요. 실제로도 괜찮고요. 왜냐면 이 시간대에 연락이 왔다는 것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이란 뜻이거든요. 또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잡혔다는 등 일탈을 고백하는 친구들도 있고, 성폭력 등 피해를 당했다는 애들도 있고요."

서 교수는 일탈 청소년들도 언젠간 변한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훈계나 꾸중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이를 확신하게 됐다. 그는 2014년 소위 ‘일진’ 학생들이 많기로 유명한 모 고교의 학교담당 경찰관으로 부임했을 때 얘기를 들려줬다.

"차상위 계층 학생들이 꽤 됐거든요. 얘네들이 아침마다 학교 옆 분식집에서 주먹밥으로 끼니를 떼우거나 친구가 먹던 걸 뺏고 그랬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제가 분식집에 수십 만 원 선불을 내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먹도록 했거든요. 그러자…"

청바지 동아리 학생들이 서 교수에 준 편지(왼쪽)와 주먹밥 제공에 감사해 하며 학생들이 쓴 감사 메시지(오른쪽)./주현웅 기자
청바지 동아리 학생들이 서 교수에 준 편지(왼쪽)와 주먹밥 제공에 감사해 하며 학생들이 쓴 감사 메시지(오른쪽)./주현웅 기자

몸에 문신을 한 학생,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분식집 장부에 ‘잘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말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놀란 학교는 직접 주먹밥을 구매해 학생들에 나눠줬다. 온정을 느낀 아이들은 그제야 서툴게나마 선생님 등 어른들에 인사를 했다.

서 교수와 청소년들과의 일화는 끝이 없었다. 어느 날 늦은 새벽에는 ‘ㅋ’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 교수는 갸우뚱하다 ‘ㅋㅋ’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ㅋㅋㅋ’이 돌아왔고, 그는 ‘ㅋㅋㅋㅋ’이라고 답장했다. 그렇게 오가던 ‘ㅋ’은 8개까지 늘었다.

"문자를 보낸 아이는 주변 친구들 소개로 제게 연락을 했다더라고요. 낯을 많이 가리고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 ㅋ이란 문자를 보냈대요. ㅋ 하나로 친해진 이후 얘기를 들어보니 성범죄 피해자였어요. 소통 창구를 열어둔 덕분에 조언도 가능했죠."

서 교수는 어느 때보다도 청소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각종 범죄와 피해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도 모르게 디지털 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는 아이가 적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가 어느 순간 스마트폰에 더 의지한다거나, 데이터 사용량이 늘었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요. 반대로 갑자기 스마트폰을 아예 안 쳐다보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청소년 범죄가 교묘해진 만큼 어른들의 세심한 관찰이 꼭 필요해요."

서 교수는 기회가 된다면 청소년들을 도울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한다. 가출을 했든 가난해서든 제대로 밥도 못 먹는 아이들에게 기프티콘 등을 제공하는 앱이다. 그는 "악용사례가 있더라도 괜찮다"며 "아이들이 그저 희망을 안고 지내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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