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쓴 서울대 학사모…'아크로폴리스'는 기억한다
입력: 2022.08.30 00:00 / 수정: 2022.08.30 07:14

서울대, 민주열사 7명에 명예졸업장…3년 만에 대면졸업식 진행

1970~1980년대 서울대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제적돼 졸업하지 못했던 7명의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았다. 사진은 29일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태훈, 김학묵, 황정하, 이진래 열사./서울대 민주동문회 제공
1970~1980년대 서울대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제적돼 졸업하지 못했던 7명의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았다. 사진은 29일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태훈, 김학묵, 황정하, 이진래 열사./서울대 민주동문회 제공

[더팩트ㅣ안정호 기자] "80년대 엄혹한 상황 속 민주주의를 위해 죽은 자로서 몫을 다했으니 살아있는 자들로서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그 몫을 다해야 한다."

1970~1980년대 서울대 재학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제적돼 졸업하지 못했던 7명의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았다.

서울대는 29일 오전 진행된 학위수여식에서 이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이날 학위수여식은 3년 만에 처음으로 대면으로 진행됐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이날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미등록, 제명 등으로 졸업하지 못했던 선배님들께 명예졸업증서를 드린다"면서 "앞으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찾아 서울대학교가 기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명예졸업장을 받은 서울대 학생은 △김태훈(경제학과 78학번) 열사 △김학묵(사회학과 78학번) 열사 △이진래(제약학과 79학번) 열사 △황정하(토목공학과 80학번) 열사 △박혜정(국문학과 83학번) 열사 △이동수(원예학과 83학번) 열사 △송종호(서어서문학과 87학번) 열사 (입학년도 순) 7명이다.

1978년 서울대에 입학한 김태훈 열사는 1981년 5월 27일, 학내 침묵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이 전투경찰과 사복형사들에 의해 구타를 당하며 끌려가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에 김 열사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크게 외친 뒤 학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 김 열사의 투신 후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학내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인식됐다.

이날 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김 열사의 누나 김선혜 씨는 "동생은 당시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면서 "(이번 학위 수여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동생의 학적부에 명예졸업이라고 명시될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은 29일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왼쪽부터) 박혜정, 이동수, 송종호 열사./서울대 민주동문회 제공
사진은 29일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왼쪽부터) 박혜정, 이동수, 송종호 열사./서울대 민주동문회 제공

김학묵 열사는 1979년 입학 후 1982년 광주민주화운동 2주기를 맞아 교내시위를 준비하던 중 경찰에 연행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수원교도소에서 1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한 김 열사는 이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1984년 행방불명됐고 이듬해 1985년 3월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2008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김학묵 열사에 대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를 인정했고 2014년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됐다.

김 열사의 형인 김준묵 전 스포츠서울 회장은 "80년대 엄혹한 상황 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동생을 포함한 열사들의 몫을 다했으니 남은 사람들은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그 몫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명예 졸업장을 받은 분들은 윤석렬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분들"이라며 "이 분들의 고결한 뜻과 희생을 기리는 사업에 관심을 가져주면 감사하겠다"고 답했다.

이진래 열사는 1979년 서울대 입학 후 학생시위에 참여했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1981년 11월 7일 군에 입대해 신병교육을 마친 후 카투사에 배속된지 이틀만인 1982년 1월 2일 부대 내에서 사망했다. 당시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가혹 행위와 입대 과정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드러났고 2018년 국방부는 이 열사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조사의 진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관련 자료접근이 어려워 진상규명 불능상태로 처리됐다.

이 열사의 형 이공래 씨는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남아있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근 40년 동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등 무수히 진정을 냈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서울대에서 이번 명예졸업장 수여로 유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달래준다는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은 서울대학교 정문./박헌우 인턴기자
사진은 서울대학교 정문./박헌우 인턴기자

1980년 서울대에 입학한 황정하 열사는 1983년 11월 8일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들로부터 피신 도중 중앙도서관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날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황 열사의 친구이자 서울대 민주동문회 소속인 강충호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도저히 못 잇겠다. 정하가 하늘에서라도 기뻐했으면 좋겠다"면서 "돌아가신 이들의 뜻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 몫을 다해서 열사들이 이루려 했던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3년에 입학해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가두시위에서 연행돼 구류된 바 있던 박혜정 열사, 박 열사와 같은 해 입학해 1986년 5월 학생회관 옥상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 한 이동수 열사, 1987년 입학 후 1991년 군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송종호 열사도 이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정병문 서울대 민주동문회 회장은 "이번 명예졸업자들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로 학교는 우리의 요청에 대해 엄혹한 시대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졸업을 진행 한 것"이라며 "학교는 과거사에 대한 회복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vividoc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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