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아이 어느덧 불혹…'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눈물
입력: 2022.08.29 05:00 / 수정: 2022.08.29 05:00

"공권력에 끌려간 뒤 인생 망가져"

경찰에게 수용 의뢰된 부랑인이 형제복지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진실화해위원회
경찰에게 수용 의뢰된 부랑인이 형제복지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진실화해위원회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차라리 죄를 짓고 처벌 받았으면 '법대로 하라'고 말하겠는데…."

형제복지원에 끌려갈 당시 9살이었던 한종선(46) 씨는 어느덧 불혹이 넘었다. 강제노역을 하고, 구타와 학대가 빈번했던 그날의 기억은 35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씨는 "사법처리를 당한 게 아니니 재심할 권리가 없다.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회고했다.

심지어 한 씨와 세 살 터울인 누나와 아버지의 기억은 형제복지원에서 멈췄다. 한 씨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던 누나는 현재 혼자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는 지난 4월 17일 코로나로 사망했다. 모두 형제복지원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탓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6년을 갇혀 지낸 김명숙(52) 씨, 이채식(53) 씨 등 1986년까지 복지원에 입소한 사람은 3만8000여 명에 이른다. 사망자만 657명이다. 한 씨는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공권력에 죄 없이 끌려간 사람들의 인생이 모두 망가졌다"고 강조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의 인권침해'로 규정한 가운데, 인권침해 사례는 열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강제수용, 강제노역 및 임금 미지급, 비의료 목적의 정신요양원 입소 및 화학적 구속, 구타 및 성폭력 등이다.

특히 1986년 한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135명으로 당시 일반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나 높은 4.30%였다.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무려 29.2배나 높았다.

또 1인당 34만 원가량이 착복됐으며, 탈출해 도망간 이들의 모아둔 임금은 지급하지 않고 '기증금' 처리했다.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을 자행하는가 하면, 경찰과 안기부 등 기관은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뉴시스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뉴시스

한 씨는 "정신과 약을 계속 복용시켜서 누나가 운동장에서 가만히 침 흘리면서 멍하게 있는 것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라며 "하도 먹을 게 없으니 정신과 약을 주면 그 껍데기에 있는 달달한 부분만 먹고 뱉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책임을 공식 인정했지만, 한 씨는 '반신반의'했다.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온 그는 "진상규명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 당장 배‧보상 특별법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전에 피해자들이 다 죽어 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다. 현행법상 과거사 피해자는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승소해야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피해 입증의 부담은 다소 덜게 됐지만, 정부의 후속 조치는 요원한 상태다.

행정안전부의 경우 앞서 다른 사건들 관련 진실화해위가 보낸 65건의 권고를 모두 반송했다. 10여년 전 활동을 마친 1기 진실화해위의 권고 중 200여 건도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국가 책임이라고는 밝혔지만, 향후 구체적인 사과와 피해 구제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한 씨는 "국가가 사과를 할 땐 언제나 '보여주기식'이 많았다"며 "피해자들은 육체와 정신 모두 망가졌고, 지금도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번에는 진정성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5년 전 형제복지원 사건을 ‘인권침해’로 판단했다. 인권위 역시 "지금까지도 피해자 구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며 "의료적 지원 조치 등을 즉각 강구하고, 충분한 배상 방안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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