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과 없이 제보자 비난 '씁쓸'
입력: 2022.08.22 00:00 / 수정: 2022.08.22 00:00

블라인드에 "자수하라"…"동료 소모품 여기나"

서울아산병원의 미흡한 조치로 한 간호사가 수술조차 못 받고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공식 사과 등은 나오지 않아 비판이 제기된다./뉴시스
서울아산병원의 미흡한 조치로 한 간호사가 수술조차 못 받고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공식 사과 등은 나오지 않아 비판이 제기된다./뉴시스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서울아산병원 사망 사건 이후 공식 사과 대신 제보자를 비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4일 근무 중 뇌출혈을 일으킨 간호사는 증상을 일으킨 지 약 7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을 빠져나간 뒤 숨을 거뒀다.

강민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서울아산병원 현장확인 결과보고서’를 보면 해당 간호사는 이날 오전 6시 20분쯤 동료들에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약 15분 뒤 발작 증세로 응급실 소생실 구역에 입실했으며 7시 02분쯤 신경외과 의사의 진료의뢰 확인 후 인공호흡기를 찼다.

오전 9시 53분 지주막하출혈 소견과 함께 한 전문의로부터 뇌혈관조영술을 받았다.

2시간 뒤 신경외과중환자실에 입실했으나 다른 수술이 필요해 오전 11시 18분 고대구로병원에 연락해 전원을 요청했다.

12시 20분 고대구로병원으로부터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아산병원은 10분 뒤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했다. 오후 1시 16분 퇴원 수속을 시작해 약 34분 뒤 약 14㎞ 거리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아산병원이 애초 전원하려던 고대구로병원은 약 26㎞ 떨어졌다는 점이다. 강동성심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이 각각 3㎞, 7㎞ 거리에 있었으나 더 먼 위치에서 전원할 곳을 찾았던 셈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아산병원이 애초 전원하려던 고대구로병원은 약 26㎞ 떨어졌다는 점이다. 강동성심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이 각각 3㎞, 7㎞ 거리에 있었으나 더 먼 위치에서 전원할 곳을 찾았던 셈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전원 조치는 지주막하출혈 수술이 가능한 의사 2명이 함께 응급실을 비웠기 때문이다. 학회 등 업무 목적 출장이 이유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통상적인 여름휴가로 확인됐다. 의사 2명이 동시에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한 인력운용 체계를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도 거론된다.

다른 의문은 아산병원이 애초 전원하려던 고대구로병원은 약 26㎞ 떨어졌다는 점이다. 강동성심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이 각각 3㎞, 7㎞ 거리에 있었으나 더 먼 위치에서 전원할 곳을 찾았던 셈이다.

이날 의식을 잃은 환자는 지난달 30일 결국 사망했다.

아산병원 관계자는 "고대구로병원에 개인적으로 아는 의사가 있어서 먼저 문의했다"며 "일반적인 전원 조치 때 필요한 각종 절차 등을 생략할 수 있어 오히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산병원 블라인드.
아산병원 블라인드.

의사 부재와 전원 시간 지체 등 아산병원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아산병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외적으로는 사과의 뜻을 밝힌 적 없다.

오히려 병원 구성원 중 일부가 사안의 제보자를 되레 비판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간호사가 숨진 다음 날 아산병원 직원만 이용 가능한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게재한 글을 통해 알려졌다.

<더팩트>가 확인한 아산병원 블라인드에서 한 직원은 언론 보도 후 "처음 글 쓰신 분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찰에 가 자수하라"며 "특히 의무기록을 열어보고 퍼뜨린 분들도 있지 않겠나"라고 적었다.

이와 비슷한 취지의 글들은 더 있다. 또 다른 직원은 "진료담당 환자 외 그분(숨진 간호사) 열람한 의료진들 반성하시고 처벌 받으시라"며 "단순한 경고 수준으로 끝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징계 사항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게재했다.

최근에 유통기한이 남았지만 곰팡이가 핀 빵이 몇몇 아산병원 간호사의 간식으로 분배된 일이 있었다./아산병원 블라인드
최근에 유통기한이 남았지만 곰팡이가 핀 빵이 몇몇 아산병원 간호사의 간식으로 분배된 일이 있었다./아산병원 블라인드

물론 병원장의 사과 등 책임 있는 자세가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직원은 "우리 병원의 수장인 병원장의 사과가 먼저였어야 한다"며 "상황에 대한 설명도 뒤따랐다면 직원들도 애도할 시간을 가졌을 텐데 씁쓸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동료를 잃은 상실감을 추스릴 겨를도 없었다는 불만이 큰 분위기다. 특히 최근에 유통기한이 남았지만 곰팡이가 핀 빵이 몇몇 간호사의 간식으로 제공된 일이 겹치며 감정이 악화했다.

아산병원 한 간호사는 "한 생명을 잃었는데 병원이나 일부 직원들이 동료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화가 난다"며 "한 공동체의 식구로서 모두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한편 복지부는 현장조사에서 아산병원이 현행법을 위반한 사실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의료진 휴가규정 및 환자 이송체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아산병원측은 "복지부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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