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설 의무화됐지만 사각지대 여전…"근본 원인은 원하청 계약구조"
서울지역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3월부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가운데 지난달 고려대에 이어 지난주 연세대도 처우 개선에 대해 구두 합의하면서 남은 대학들도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
[더팩트ㅣ안정호 기자] 서울 지역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고려대에 이어 연세대에서도 처우 개선에 합의했다. 다른 대학과 협상도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17일 대학 등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학내 집회를 이어 온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지난주 용역업체와 구두 합의를 이뤘다.
앞서 고려대도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 △샤워실·휴게실 개선 등 내용에 잠정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서울지역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내 13개 분회 중 6곳이 합의에 이르거나 윤곽이 나왔다. 아직 합의하지 못한 곳은 덕성여대, 서강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카이스트 등 7곳이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지난 2010년부터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4곳을 시작으로 서울 지역 대학 소속 노동자들과 함께 교섭을 진행했다. 특히 2019년 8월 서울대에서 60대 청소노동자가 창문이 없는 한 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사망하면서 휴게 공간 확보와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
이런 여파로 이달 18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돼 모든 사업장 내 최소 6㎡ 이상의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된다. 다만 20인 미만 사업장은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빠졌고,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최소 휴게 공간 기준이 6㎡에 불과해 근로자 건강권이 온전히 보호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후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대학은 간접고용을 쉽게 쓰는데 관리감독의 주체인 교육부와 노동부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면서 "교육부는 대학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인원·임금·노동조건·복지 등 실태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대학정보공시제도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용노동부는 18일 시행되는 휴게실 의무 설치에 따라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 설치와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이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가 지속되는 원인으로 대학이 노동자가 아닌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 원하청 구조를 꼽는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과거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상용직이라 불리우는 직고용 비정규직 형태로 근무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전부 아웃소싱하면서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하청업체와 계약이 끝날 때마다 고용승계를 해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들은 직접 고용한 직원이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업체는 대학이 지급한 예산대로 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이 직접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라면서 "그 과정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대학이 교섭 상대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노동자 문제는 원하청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원청인 대학 당국이 이 문제를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문제가 더 꼬이고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며 "원청이 노사문제에서 빗겨선 태도를 취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청인 대학이 직접 교섭에 나서긴 어렵겠지만 평소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에 대한 소통을 원활히 한다면 노사관계 속에서 교섭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vividocu@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