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통제' vs '경찰 장악'…정부조직법 해석 제각각
입력: 2022.06.29 05:00 / 수정: 2022.06.29 05:00

'모호하다' 지적 일치…경찰 장악 의심 풀려면 "수사 제외 등 명시해야"

행정안전부와 정치권에선 이 정부조직법 제34조5항을 각각 경찰 통제와 행안부 장관 탄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주현웅 기자
행정안전부와 정치권에선 이 정부조직법 제34조5항을 각각 경찰 통제와 행안부 장관 탄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주현웅 기자

[더팩트ㅣ주현웅·김이현 기자]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정부조직법 제34조5항).

이 법조항이 해석에 따라 경찰의 운명을 좌우할 요소 중 하나로 떠올랐다. 행정안전부와 정치권에선 각각 경찰 통제와 행안부 장관 탄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찰국 설치' 등을 추진 중인 행안부는 장관이 경찰청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로 삼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선 이 법으로 행안부 장관을 탄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치안 사무는 경찰청이 관장하며 행안부 장관이 직접 수행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더팩트>가 취재한 법률가들에 따르면 ‘치안’과 ‘사무 관장’의 범위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치안이란 무엇인가, 관장이란 어디까지인가

전문가들은 정부조직법 34조5항의 문구가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체로 동의했다. 행안부와 정치권의 입장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재단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치안에 관한 사무 관장’이란 문구 ‘관장’의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이헌 변호사(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는 "경찰청이 치안 사무를 직접 관장한다지만 결국 행안부에 소속된 것 역시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치안 사무 관장이란 게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영향이 미치는 범위까지 행안부가 관장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 "이 부분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진단이 비슷했다.

노 변호사는 "행안부와 민주당 양쪽 주장 전부 일리는 있다"며 "국가경찰위원회 등이 존재하긴 하나 결국 경찰에 대한 총괄적인 견제는 누군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논란의 이면에는 ‘수사 중립성 훼손’도 포함됐는데, 그런 점에서 ‘치안’의 범위에 수사가 해당하는지가 중요하다"며 "통상적으로는 경찰 업무 중 교통과 방범 등이 이에 속하지만, 행안부가 치안에 수사도 포함된다고 밝히면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7일 경찰국 신설을 통한 경찰 통제 방안을 언급하며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7일 '경찰국' 신설을 통한 경찰 통제 방안을 언급하며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뉴시스

◆ 법 조항 떠나…'외청 자율성'vs'정책 판단 영역'

경찰청이 ‘외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범진 변호사는 "명문화된 법 조항을 액면 그대로 읽기에 앞서 경찰청이 외청이라는 점부터 고려해야 한다"며 "옛 치안본부는 외청이 아니어서 내무부가 직접 지휘·감독하는 게 가능했으나, 현재는 경찰청이 독립 편성돼 있으므로 구체적 지휘·감독은 제한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전 변호사는 특히 "검찰과 비교하면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하게 하지만 경찰법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며 "법체계 자체가 외청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 행안부의 직접 통제를 제한할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지만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면 다방면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예컨대 경찰과 같은 외청인 소방청의 경우 장관 사무에 소방이 없는데도 화재가 발생하면 일정 수준의 행안부 장관 지휘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또 "행안부가 가장 기본적인 소속 외청에 대해 아무런 지휘 감독을 못한다면 이 역시 의문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행안부 방침은 정책적 차원에서 최선이냐, 차선이냐, 최악이냐 등 평가의 영역일 뿐이지 법적으론 시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 공무원연맹·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원들이 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경찰의 독립·중립 훼손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한국노총 공무원연맹·전국경찰직장협의회 회원들이 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경찰의 독립·중립 훼손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 "수사 제외 명시해야"…'민주적 통제' 미사여구 그칠 수도

논란을 가라앉히려면 모호한 법 해석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은 일치한다. ‘치안’과 ‘관장’의 의미를 정의하며 ‘수사는 제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 ‘정부의 경찰 장악’ 의심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헌 변호사는 "경찰 통제 필요성이 거론된 배경은 행정적인 의미에서 견제와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며 "구체적인 수사 사건이나 정치적 영향이 미치는 분야에 행안부가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면 대단히 곤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희범 변호사는 "치안과 사무 관장의 범위에서 수사는 제외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민주적 통제’라는 표현은 미사여구에 그칠 뿐"이라며 "정부의 경찰 장악 등 세간의 의심을 해소하려면 빌미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 차원에서 ‘수사 제외’를 정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형사사건 전문인 남성진 법무법인 선율로 대표변호사는 "행안부의 경찰 통제가 가시화하면 경찰의 독립적 사건 처리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경찰의 개별 수사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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