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인데 출근하라는 원장…갑질에 우는 사립유치원 교사들
입력: 2022.05.30 00:00 / 수정: 2022.05.30 00:12

‘교원’ 혹은 ‘일반근로자’ 법적지위 불분명…당국은 서로 떠넘기기

몇몇 사립유치원의 갑질 및 부당 노동행위 등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몇몇 사립유치원의 갑질 및 부당 노동행위 등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더팩트DB

[더팩트ㅣ주현웅·김이현 기자] "각종 기념일마다 원장님에 꼭 선물을 상납해야 돼요."

"코로나 자가검사에서 양성이 떴는데도 PCR(유전자증폭)검사를 못하게 합니다."

"근로시간도 휴게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게 해요."

제보된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몇몇 사립유치원의 갑질 및 부당 노동행위 등 실태다. 10여 명의 사립유치원 교사 대부분은 <더팩트>에 유치원 이름은 물론 지역도 공개하지 않길 바랐다. ‘좁은 바닥’에서 만에 하나 제보자가 특정되면 업계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를 향한 불만도 크다. 사태를 고발해도 관련 부처들이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교사는 사인 간 계약에 따라 일하는 일반 근로자이므로 고용노동부에 가라"고 했다. 노동부에선 "사립유치원 교사는 교원에 속하니 교육부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사립유치원 교사의 행정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한 이유다.

명절이면 여러 선생님과 각출해 30만~50만 원가량의 한우나 홍삼 세트를 원장 집에 배송해야 했다. 스승의날에도 원장에 과일세트 등의 선물을 줘야만 했다./더팩트DB
명절이면 여러 선생님과 각출해 30만~50만 원가량의 한우나 홍삼 세트를 원장 집에 배송해야 했다. 스승의날에도 원장에 과일세트 등의 선물을 줘야만 했다./더팩트DB

◆ 무임금 초과노동에 월급 페이백…갑질 천태만상

수도권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 A씨는 월급을 온전히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교육청이 지원해온 유아학비가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자 급여의 30%를 원장에게 반환했다. 지시에 따라 현금을 뽑아 직접 건넸다. 처음 받은 명절 상여금은 회식비로 쓰는 게 관행이란 이유로 돌려줘야 했다.

원장에 지출하는 돈은 상당했다. 명절이면 여러 교사와 갹출해 30만~50만 원가량의 한우나 홍삼 세트를 원장 집에 부쳤다. 스승의날에도 원장에 과일세트 등의 선물을 줘야만 했다. 일종의 ‘룰’이었다.

"보람이라도 느끼면 낫겠지만…". 다른 사립유치원 교사 B씨의 토로다. 상납보다 부당한 일에 순응해야 한다는 죄책감이 더 괴롭다. 특히 학부모에게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해야할 때 가장 힘들었다.

예컨대 교육청의 모 프로그램을 통해 한 아이가 정신지체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B씨는 결과를 학부모에게 전하지 못했다. 다른 학부모들이 알면 원생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 철저히 함구하라는 원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원장에 밉보였다가 부당노동에 시달리는 일은 허다하다. 퇴근 후 밤 11시까지 수당을 못 받고 김장을 하거나, 코로나 자가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는데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을 숨긴 채 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버티다 못해 관두는 순간조차 교사를 괴롭히기도 한다. 퇴사 날짜를 2~3일 앞당겨 근무기간을 1년 미만으로 기록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는 흔하다. 이 경우 이직할 때 호봉 산정에 불이익이 따르게 된다.

명백한 불법 행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피해사례를 취합해본 결과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이 나와 있지 않은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교사도 부지기수였다.

박사영 노무사(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는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따라 근로시간 등은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며 "이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이처럼 갑질 등 부당노동에 시달려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교사들이 교육청과 노동부 등 기관에 부조리들을 고발했으나, 해당 기관들은 전부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이처럼 갑질 등 부당노동에 시달려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교사들이 교육청과 노동부 등 기관에 부조리들을 고발했으나, 해당 기관들은 전부 ‘우리 담당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 노동자? 교원?…관련 부처는 ‘뒷짐’

이처럼 갑질 등 부당노동에 시달려도 사립유치원 교사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최근 일부 교사들이 교육청과 노동부 등 기관에 부조리들을 고발했으나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답만 돌아왔다.

사립유치원 교사의 법적 지위가 교육계 종사자인 ‘교원’인지, 사인 간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일반 근로자’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반 근로자라면 노동부가 담당 부처가 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예다. 교원이라면 교육부가 부처로서 사립학교법 등으로 보호가 가능하다. 여기에는 국·공립 유치원 교사만 해당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립유치원 교사는 교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기 때문에 판가름하기 모호한 부분이 있다"며 "교육부에 해석을 맡겨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반면 교육부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에서 유아교육법이나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는 등 행위가 있었다면 관할 교육청에서 지도감독하는 게 맞다"면서 "이밖에는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노동부 관계 법령이 어떤 게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립 교원의 경우 사립학교법 외에도 다양한 규정이 있는데 소관부처인 교육부가 내용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립유치원 교사는 불분명한 지위 때문에 행정 사각지대에 놓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사립 교원 중 유치원 교사의 지위를 향상하는 조항을 만드는 등 적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교육청이나 교육부 등 관련 부처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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