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근 후보자와 '죽음의 마을' 악연…주민들 "잊지 않았다"
입력: 2022.05.08 00:00 / 수정: 2022.05.08 00:00

장점마을 집단암 발병에 책임…과거 농진청장 당시 '이상없음' 결론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이 마련된 세종시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 첫 출근을 하는 모습./세종=임영무 기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이 마련된 세종시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 첫 출근을 하는 모습./세종=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논의를 바라보는 한 마을의 주민들은 무너진 마음을 좀처럼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정 후보자가 농촌진흥청장 당시 제대로 조치했다면 이웃주민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원망 때문이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은 인근 비료공장이 불법 제조행위를 반복하고, 유해물질을 배출한 탓에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려 14명이 사망한 곳이다. 이는 환경부가 역학조사를 벌이며 설정한 구역의 피해 수치이고, 주민들이 같은 공동체 일원으로 몸소 체감하며 지내온 지역을 놓고 보면 사망자는 약 30명 수준이다.

이 같은 피해를 인정받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주민들이 문제의 비료공장이 들어선 2001년부터 수십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농촌진흥청도 문제를 외면한 한 곳이었다. 비료의 제조 및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2014~2017년 7차례에 걸쳐 공장을 점검했으나 모두 ‘이상없음’ 결론을 냈다.

정 후보자는 2016년 8월~2017년 7월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했다. 당시에도 두 차례(2016년 9월, 2017년 4월) 장점마을의 비료공장 조사가 있었다. 역시 ‘공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2019년 1심부터 지난해 7월 대법원까지 전부 해당 공장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공장 대표는 비료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농촌진흥청 등의 오판이 낳은 후폭풍은 거셌다. 이전부터 사망자가 잇따르긴 했으나, ‘이상없음’ 결과가 나온 뒤에도 세상을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갔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사망한 주민은 5명이다. 심지어 이 공장을 처음 설립한 대표도 2018년 폐암으로 숨졌다.

장점마을의 집단안 발병 원인으로 밝혀진 비료공장의 내부 모습.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주현웅 기자
장점마을의 집단안 발병 원인으로 밝혀진 비료공장의 내부 모습.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주현웅 기자

공장 불법행위의 핵심은 ‘퇴비’ 제조 때만 써야 할 담뱃잎을 ‘비료’ 제조에 썼다는 것이다. 비료를 만들 때는 건조과정을 거친다. 담뱃잎에 열을 가하면 일반 담배와 다를 바 없다. 이 공장은 담뱃잎을 건조하며 발생시킨 연기를 굴뚝으로 뿜었던 셈이다. 주민들은 굴뚝째 나오는 담배 연기를 마시며 지낸 것과 다름 없다.

행정 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스스로 진실을 밝혔다. 협의회를 꾸려 자체 조사를 벌였고, 언론에 꾸준히 제보하며 사태를 공론화했다. 환경부는 2017년 12월에야 역학조사에 돌입, 2년 만에 공장의 문제를 인정했다. 시골 마을 주민들의 20년 투쟁은 ‘국내 첫 비특이성 질환의 환경피해 인과관계 인정’ 결실을 거뒀지만, 수십 명의 목숨을 대가로 한 비극이었다.

역학조사 결과 발표 이후 주민들에 사과한 이들은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마을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농촌진흥청에도 부실점검 사과를 촉구한 적 있으나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만 농촌진흥청은 2020년 9월 연초박을 비료의 원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비료 공정규격설정 및 지정 고시’를 개정했다.

정 후보자 청문회가 진행된 지난 6일 장점마을 주민들은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 최재철 장점마을 대책위원장은 "우리 마을의 집단암 발병 사태는 여전히 커다란 상처로 남아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며 "정 후보자가 이끄는 농촌진흥청이 문제의 공장에 퇴비화 시설이 있긴 했는지만 확인했어도 이러한 환경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농촌진흥청에서는 비료를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를 단속했고, 환경 문제는 환경부에서 담당했다"며 "부서가 어디든 장점마을 문제를 밝혀내지 못한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농진청의 불찰을 인정하고 주민들을 위로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검토해보겠다"고 확답을 피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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