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에 300건' 눈 뜨면 산불…방화범은 '기후위기'
입력: 2022.04.17 00:00 / 수정: 2022.04.17 00:00

전년 대비 1.8배 증가…정책 전환에 예산 증액 절실

지난 3월 초 강원 강릉·동해·삼척과 경북 울진 일대를 뒤덮은 화마는 축구장 2만3000개 규모, 서울 면적 약 3분의 1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산림청 제공
지난 3월 초 강원 강릉·동해·삼척과 경북 울진 일대를 뒤덮은 화마는 축구장 2만3000개 규모, 서울 면적 약 3분의 1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산림청 제공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오늘 날씨는 매우 건조하겠습니다’라는 예보가 태풍만큼 무서운 소식이 됐다. 지난 3월 초 강원 강릉·동해·삼척과 경북 울진 일대를 뒤덮은 화마는 축구장 2만3000개 규모, 서울 면적 약 3분의 1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앞으로도 반복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짧은 주기에 더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원인은 기후위기다. 다만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또 산림보존이라 보다 적극적인 산불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 자고 일어나면 산불…갈수록 심해진다

최근 가장 많이 나온 뉴스 중 하나는 전국 각지의 산불 소식이었다. 강릉·동해와 울진 등에서 발생한 초강력 산불 이후에도 강원 양구, 경북 고령, 전북 무주, 전남 장성, 충남 서산, 충북 영동 등 곳곳의 산불 사고가 전해졌다. 수도권인 경기도에서도 하남 위례신도시 인근에 지난 4일 산불이 났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발생한 산불만 304건이다. 전년도 같은 기간 167건의 약 1.8배 수준이다. 작년에 총 발생한 349건에 근접한 수치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겨울 가뭄이 유독 심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 통계부터 살펴보면 산불피해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1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277건이었다. 2012년은 197건, 2013년은 296건으로 비슷했다. 그러다 2019년 653건, 2020년 620건까지 치솟았다.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면 1980년대 평균 산불 발생 건수는 238건, 1990년대는 336건이었다.

악화한 산불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는 또 있다. 국내 산림면적은 1990년 647만6000㏊에서 2020년 623만6000㏊까지 줄었다. 30년 동안 24만㏊의 산림이 사라진 셈인데 산불은 더 자주 발생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산불은 지리적 특성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우리나라는 봄철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돌며 서풍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타고 넘어가면서 수분을 빼앗겨 동쪽에 건조한 날씨를 형성한다. 동쪽에 자리한 강원 영동 지방에서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게 이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가장 큰 산불 피해면적을 기록한 지역은 경북 2053㏊, 울산 531㏊, 강원 220㏊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양상도 깨지는 모습이다. 한국방재학회가 과거 50년 산림 통계 등을 분석해 2012년 발표한 ‘산불통계로 본 우리나라의 산불특성 연구’ 결과를 보면, 2000년대 들어 충청도와 전라도는 산불발생 건수 자체야 이전과 비슷했으나 건당 피해면적이 넓어졌다.

과거 통계부터 살펴보면 산불피해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1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277건이었다. 2012년은 197건, 2013년은 296건으로 비슷했다. 그러다 2019년 653건, 2020년 620건까지 치솟았다./산림청 참고
과거 통계부터 살펴보면 산불피해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1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277건이었다. 2012년은 197건, 2013년은 296건으로 비슷했다. 그러다 2019년 653건, 2020년 620건까지 치솟았다./산림청 참고

◆ 산불 부른 기후위기, 대응책도 ‘산림보존’ 역설

여러 논문이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와 국립산림과학원이 같은 해 공동으로 편 ‘기후 변화에 따른 한반도 산불 발생의 시공간적 변화 경향’은 한 예다. 1991~2008년 통계를 살핀 연구진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산불 발생이 증가 추세를 나타내지만 호남 지역이 특히 급격하다"며 "호남이 기후 평균적으로 이른 봄철 강수일수가 가장 많은 지역임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호남 지역의 산불 증가에는 한반도 기후 변화가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산불을 키웠다는 분석은 국제사회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IPCC 워킹그룹 II 6차 보고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2℃까지 상승하면 산불피해 면적이 최대 35%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산림보존이란 점은 역설이다. 파리기후변화협정 제5조는 "온실가스 흡수원과 저장소의 역할을 하는 산림을 보전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고려한 산불정책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기존 방식으로는 진압되지 않는 강도의 산불이 증가한 이유는 기후위기로 인해 화재의 발생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기후위기 상황에 맞는 산불진화 메뉴얼을 만들고, 조직과 인력 등 전반에서 새로운 차원의 산불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 예방을 위한 인력과 장비를 현실적 수준에 맞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년 1만2000여 명의 산불감시원이 고용되고 있으나, 국토의 약 64%를 차지하는 산지를 감시하기엔 한참 모자란다는 이유에서다. 강원도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산불 관련 예산 인상 필요성이 늘 거론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매년 비슷한 수준의 예산이 편성된다"며 "나중에라도 꼭 개선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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