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카페‧식당 일회용품 제한 '안내 중심'…감염병 반복, '포스트코로나' 대비해야
이달 시행된 카페‧식당의 일회용품 제한도 과태료 대신 계도 중심으로 바꿔 사실상 무력한 조치가 되고 말았다./더팩트DB |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코로나 방역이 오랫동안 최우선시되면서 환경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급증하는 일회용품 배출에 분명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방법을 못 찾고 있다. 이달 시행한 카페‧식당의 일회용품 제한은 과태료 대신 계도 중심으로 바뀌며 사실상 무력한 조치가 되고 말았다.
해외도 비슷하다. 기존의 환경 규제들을 유예한 나라도 있다. 다만 플라스틱 사용 등에 관한 ‘중장기 대책’을 강구할 필요성은 대부분 인정한다. 감염병은 언제든 또 유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한 환경 정책 마련이 중요한 숙제다.
◆일회용컵 쓰면 방역에 도움? 과학적 근거 있나
당초 환경부는 지난 1일부터 카페‧식당의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하려고 했다. 코로나 유행으로 플라스틱 등 쓰레기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년보다 19% 늘었다. 같은 기간 발포수지류는 14%, 비닐류도 9% 증가했다. 일단 카페‧식당의 일회용품 배출량이라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방역에 또 양보했다. 안철수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코로나비상대응특위 전체회의에서 "생활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조치를 시행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결국 환경부는 과태료 부과 등 단속 대신 지도와 안내 중심의 계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과태료 면제 방침을 놓고 자영업자와 감염을 우려해온 일부 시민 등은 "걱정을 덜었다"는 분위기지만, 한국환경회의 등 환경단체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해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는 일회용품이 방역에 과연 유익한지 과학적 근거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진다. 안철수 위원장은 줄곧 ‘과학방역’을 강조한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일회용품이 방역을 돕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냐고 맞선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에서 "안 위원장이 중요한 환경정책을 비과학적인 근거로 하루아침에 역주행한다"며 "늘어나는 폐기물 부담은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되물었다.
환경단체는 오히려 일회용품과 바이러스 감염은 과학적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미국사무소에서는 2020년 6월 전 세계 공중보건 및 식품 안전 분야 과학자, 의사 등 전문가 115명이 "물체 표면을 통한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성은 일회용품과 다회용품이 비슷하다"며 "기본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럽환경청(EEA)은 2019년 "마스크, 장갑 등 일회용 개인보호장비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코로나19가 플라스틱 소비문화를 바꾸고 있다"며 "이는 EU가 추구하는 탈플라스틱 정책의 중장기적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자원재생센터 야적장 쌓인 폐프라스틱./임영무 기자 |
◆ 참 힘든 플라스틱과의 이별…'환경선진국' 유럽도 고민
단 바이러스가 비말로 감염되는 특성에 견줘, 타인의 입에 닿은 다회용품을 재사용하기 꺼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일회용컵이 방역에 낫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회용컵이 안전하다는 증거도 없지 않냐는 의심이 커 논란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해외 국가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환경 문제에 각별한 유럽마저 걱정이 크다. 유럽환경청(EEA)은 2019년 "마스크, 장갑 등 일회용품 수요가 폭증해 코로나가 플라스틱 소비문화를 바꾸고 있다"며 "이는 EU가 추구하는 탈플라스틱 정책의 중장기적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환경 규제 정책들을 결국 유예한 나라도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2020년 도입한 플라스틱세를 지난해 7월 시행하려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연기된 상태다. 영국은 2020년 4월부터 빨대·면봉 등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려던 계획을 6개월 늦게 이행했다. 가까스로 도입은 했으나 의료 및 요양 목적에는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토록 했다.
미국도 워싱턴 D.C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에서 2019년 말쯤 비닐과 플라스틱 빨대 등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상황이 급변했다. 바이러스 전파와 감염 위험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규정이 일시적으로 폐지되거나 시행이 연기됐다.
포스트코로나를 대비한 정부의 중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사진은 환경부 세종청사./주현웅 기자 |
◆ 감염병 또 오는데…‘중장기 대책’ 절실
전문가들은 중장기 환경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코로나만 넘기면 플라스틱 규제 등을 재가동하겠다지만,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세계를 덮치기 때문이다. 최근만 봐도 2003년 사스, 2010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가 유행했다. 4~7년마다 바이러스가 찾아온 것이다.
강희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언제 진정될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환경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감염병에 따른 환경 규제 완화의 역기능이 빠르게 수습되지 못하게 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회용품 수요가 증가한 소비의 패러다임 자체를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생분해플라스틱 등 환경기술 개발에 힘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환경교육을 강화해 저변 자체를 넓혀야 한다"며 "카페에서는 가령 텀블러를 쓰는 게 힙(hip)하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 등 인식의 변화는 교육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정책의 근거부터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를 이유로 카페 내 일회용컵 사용을 일시 허용한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며 "머그컵이 감염 가능성을 높인다면, 사람들 입에 직접 닿는 식당의 숟가락과 젓가락도 전부 일회용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홍 소장은 "과학적 근거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시민들 혼란도 가중된다"며 "우선 환경부는 현재 안내·지도 중심인 카페 내 일회용컵 사용 제한 조치에서 정확히 언제까지 과태료를 면제할 것인지 명시해야 한다. 일회용, 다회용 여부가 감염병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점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