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청춘 목숨값, 무죄 아니면 집유…어깨 무거운 '중대재해법'
입력: 2022.02.12 00:00 / 수정: 2022.02.12 00:00

격앙된 청년·노동계…법 개정 요구 목소리도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전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의 당위성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사진은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가 판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서산 = 김아영 기자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전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의 당위성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사진은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가 판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서산 = 김아영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5일 만에 '김용균 사망 사건' 1심에서 원청인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판결에 대한 청년·노동계의 반발과 함께 법적 허점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원청기업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3년 넘게 질질 끌었던 재판 과정에 누구도 책임을 인정한 적 없었다. 가해자인 원청기업을 일벌백계 해야 중대재해를 멈출 수 있다. 2심은 꼭 달라져야 한다."

지난 11일 청년들로 구성된 한국청년연대·청년진보당·청년전태일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을 접한 뒤에 낸 목소리다.

◆스물셋 청년 비명에 갔는데 무죄 1명·집행유예 11명·벌금형 2명

전날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서부발전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의로 방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이나 하청업체와의 위탁용역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고의 책임은 사측에 있지만 원청의 대표이사가 일일이 파악하긴 어려웠다는 뜻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서부발전·발전기술 임직원 14명 중 13명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솜방망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11명에게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비교적 지위가 낮은 하청업체 소속 직원 2명은 벌금 700만 원에 처해졌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 사람이 죽었으면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항소해서 승소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노동계 반발도 거셌다. 민주노총은 "사법부를 규탄하며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달 29일 붕괴사고가 발생해 3명의 매몰자가 발생한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지난 달 29일 붕괴사고가 발생해 3명의 매몰자가 발생한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김용균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발생했으니 재판의 한계는 뚜렷했다. 다만 앞으로 법정에 오를 중대재해 사건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항의 모호성이 꾸준히 지적되지만 보완할 방법마저 뚜렷하지 않아 문제다.

예컨대 정부가 마련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해설서’를 보면 도급이나 용역업체가 있을 때 현장의 예방책임은 '실질적으로 사업을 지배·운영·관리하는 자'가 맡는다고 규정한다. ‘실질적’이란 규정 자체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처벌대상으로 명시된 ‘경영책임자’의 의미도 오너인지 전문경영인인지 등이 불명확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직후 오너경영을 하던 기업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등 꼼수가 잇따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원청의 용역을 받은 업체가 재하청을 주면 어느 선까지 법을 적용할지, 각각의 책임 범위는 어떻게 설정할지도 난해하다"며 "지금 분위기면 판례가 쌓일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모호한 조항 수두룩해 벌써부터 법 개정 목소리

시행규칙을 제정해 법을 정교화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에서 ‘노동부장관령으로 정한다’는 등의 위임규정이 있어야 시행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데 법령에 따르면 해당 사항이 없다"며 "법을 바꾸지 않는 한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용균재단 등은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다. 재단 관계자는 "인과관계 추정과 공무원 처벌 규정 등 과제가 많다"며 "노동자들과 시민의 생명이 우선되는 사회로 가는 디딤돌 마련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최근 발생한 2건의 중대재해 사건을 수사 중이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양주시 채석장에서 노동자 3명이 토사붕괴로 숨진 사건에서는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지난 9일 입건했다.

전남 여수시 화치동 여수국가산단의 여천NCC 여수공장 3공장에서 지난 11일 폭발로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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