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새해 꿈은 '제2의 김용균 없는 세상'…"기성세대 인식 바꿔야"
입력: 2022.02.01 00:00 / 수정: 2022.02.01 00:00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인터뷰 …"산재 80%는 50인 미만 사업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불량조립품 검사하는 일을 했어요. 공장 벽에는 직원들의 생산량 실적이 그래프로 크게 붙었죠. 불량을 3번 못 잡아내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타박을 받고 시말서를 썼어요. 어떤 관리자는 돌돌 말은 종이로 직원 머리를 툭툭 내려치고…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전 직원 서명을 받든 노조를 결성하든 우리의 인격을 꼭 지켜야죠."

그도 노동자였다. 당당했지만 가끔은 부당함을 지나친 때도 있었다. 혹시 해고를 당할까, 주변에 피해가 될까. 특히 남편 건강이 나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무거웠다. 생계 때문이었지만 수동적인 노동문화를 청년들에게 남긴 듯해 미안하기만 하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이야기다. 그는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확대를 올해 꼭 풀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궁극적으로는 ‘제2의 우리 아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에 힘을 보태는 게 꿈이라며 기성세대와 사회지도층에 쓴소리를 남겼다.

◆죽이지는 말자는데 ‘처벌 본보기’ 겁낸 기업들에 허망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만난 김 이사장은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전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1호는 피하자’며 조업을 멈춘 사업장이 여럿이라는 언론 보도가 허탈했다.

"기업이라면 노동자가 만에 하나 중대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방지해야죠. 처벌대상 1호가 될까봐, 본보기가 될까봐 무서워서 일을 안 한다니요."

아들을 곁에서 보내고 이 법이 시행되기까지 3년여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용균이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하려고 사업장으로 향한 날, 회사는 물청소를 마치고 흔적을 없앴다. 법정에서 마주한 원청 직원들은 책임을 미루기 바빴다. 가까스로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기업경영이 위축될 것’이라는 등의 반발에 계속 부딪혔다.

"용균이는 불과 1럭스(촛불 1개 정도의 불빛) 조명 아래에서 일했어요. 안전장비는 없었어요. 월급으로 산 손전등이 전부였어요. 2인1조 지침도 안 지켰어요. 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할 작업장 만드는데 기업의 이익 수십 퍼센트씩 드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의 죽음을 막자는 당연한 외침이 왜 이토록 고단한 걸까. 왜 여전한 걸까. 아직도 생각이 많아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무엇보다 김 이사장에겐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다. 법 적용 대상 확대는 급하다.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까지 적용 유예,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에서 제외됐다. 또 인과관계 추정조항 삽입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전체 산업재해 80% 이상이 50인 미만 기업에서 발생해요. 그리고 저를 비롯한 산재 유족들이 가장 비참한 게 뭔지 아시나요. 권한과 여건이 전부 미흡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 현실이에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얼마나 많겠어요. 법 개정해야죠."

◆ ‘이생망’이라는 청년들…"어른들이 바꿔야"

그는 이번 명절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되레 아들의 빈자리가 또렷이 느껴진다. 용균이가 있었을 땐 같이 떡국을 먹고 대화하는 게 평범하게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행복이었단다. 김 이사장은 이번 설에는 친척과 오랜만에 만나 집에서 소박한 식사를 할 계획이다.

다만 설이 지나면 전국 곳곳에 있는 용균이를 만나러 간다.

"올해까지는 재단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재단이 더욱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려 합니다. 후원 확대도 목표하고 있어요. 뭣보다 그동안은 불러주는 곳으로 향했는데, 이제 청년들을 먼저 찾아가 손을 내밀 겁니다. 중대재해 재판에도 참석해 유족들을 위로하고, 힘을 모으고, 좋은 판례가 쌓일 수 있도록 있는 힘쓰려고요."

김 이사장이 이같이 나서려는 건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노조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의미를 설명했다.

"용균이 사고 현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끼 입은 아저씨들을 처음 봤어요. 운수업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죠. 도움의 손길을 건네와서 잡긴 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못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분들도 ‘끝까지 싸우는 유족이 많지 않다’는 불안(?)이 제게 있었다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뭉치면 강해지거든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영등포구 김용균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이선화 기자

그의 눈길이 특히 향하는 이들은 단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은어의 의미를 알고는 정말 끔찍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단어가 아닐까.

"학교 다닐 때는 인간의 존엄성, 인격, 권리 등을 자세히 배우잖아요. 그런데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무시당해요. 위에서 짓누르면 밟힐 수밖에 없는 현실이잖아요. 비정규직들은 더 심하죠. 고용 불안 등 때문에 더욱 위축되니까요."

김 이사장은 "어른이 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선국면에서 ‘주 120시간 노동’ 발언 등이 나오는 현실을 짚으며 사회 지도층들의 인식 전환도 촉구했다.

"주 120시간 일하면 돈도 배로 줍니까. 아니면 죽으라는 겁니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가 더 잘 살고 행복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예요. 적어도 안전한 노동, 권리를 보장받는 일터는 만들어줘야지요. 우리 어른들과 사회의 지도층들이 노동 실태에 더 관심 갖고 귀를 좀 기울여주세요."

당장 김용균재단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투쟁'을 예고했다.

오는 10일 대전지방법원에서는 한국서부발전 등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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