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상 '빵점' 맞은 서술형 4번…현직도 못 푸는 세무사시험
입력: 2022.01.10 05:00 / 수정: 2022.01.10 08:20
지난해 9월 세무사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시험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항의를 잇고 있다. 기관이 ‘난도조절 실패’를 인정했으나 수험생들의 의심은 줄지 않고 있다./세시연 제공
지난해 9월 세무사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시험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항의를 잇고 있다. 기관이 ‘난도조절 실패’를 인정했으나 수험생들의 의심은 줄지 않고 있다./세시연 제공

공무원 특혜 의혹 파장...산인공 '난도조절 특허' 서술형에서 작동 못해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지난해 세무사시험에서 불거진 공무원 특혜 의혹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이 고용노동부 감사를 받고 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험생들은 "단순 난도조절 실패가 아닌 의도적 공무원 특혜 정황이 더욱 눈에 띈다"며 울분을 토로한다.

일반 수험생만 치르는 과목의 특정 문항에서 응시자 약 4000명 평균점수는 50점 만점에 10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산인공이 5년 전 홍보한 ‘출제관리시스템 특허’는 서술형 시험에선 무용지물이란 사실까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전문가들도 통상적인 시험 채점 절차에 비춰 이례적 결과라고 본다. 산인공 주관 시험이 매해 논란이 반복돼 시험 관리 업무 위탁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현직 세무사, 회계사도 못 푸는 문제"

10일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세시연)에 따르면 작년 9월 세무사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지난달 29일부터 세종시 노동부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인공 철저 감사와 채점기준표 및 모범답안 등 공개를 요구 중이다.

문제의 발단은 ‘세법학1부’다. 20년 경력 이상 세무공무원은 면제받는데 과락(40점 미만) 비율이 82%다. 최근 5년 평균 38%의 두 배를 웃돈다.

일반 수험생이 탈락한 자리는 세무공무원이 대거 꿰찼다. 이들의 합격률은 21.39%로 지난 5년 평균 합격률 2.53%의 약 10배 수준이다.

세법학1부 과목 중에서도 법인세법과 상증세법 등을 물은 서술형 3,4번 문항이 오류로 지적된다. 워낙 지엽적인 부분에서 출제된 탓에 현직 세무사라도 풀 수 없는 문제였다는 게 수험생들 주장이다. 특히 4번 문항의 경우 전체 응시자 3962명 중 절반이 넘는 2025명(51.1%)이 0점을 받았다.

유튜브 ‘떠먹여주는세법’을 운영하는 박세준 세무사는 "공무원 특혜 등 비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더라도 풀기 어려웠다"라며 "그동안 출제되지 않았던 유형의 문항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세법학1부 평균 점수를 통계로 살피면 응시자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점수로 탈락의 고배를 맛봤다. 논란이 된 2개 문항의 평균점수가 총 50점 만점에 10.59점에 그쳤다.

<더팩트>가 입수한 ‘2021년 2차 세무사시험 문항별 평균점수’ 자료에 따르면 4개 문제로 구성된 이 과목은 총 3962명이 치렀다. 응시자들의 문항별 평균점수는 각각 △1번 8.67점(30점 만점) △2번 11.87점(20점 만점) △3번 8.03점(30점 만점) △4번 2.56점(2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세무공무원이 함께 치르는 회계학 1부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이 과목의 응시자는 4597명이었다. 역시 4개 문항으로 구성됐으며, 응시자들의 평균점수는 각각 △1번 22.53점(30점 만점) △2번 20.1점(30점 만점) △3번 9.11점(20점 만점) △4번 13.56점(20점 만점)이었다.

작년 9월 세무사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지난 12월 29일부터 세종시 노동부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세시연 제공.
작년 9월 세무사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지난 12월 29일부터 세종시 노동부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세시연 제공.

◆ 역할 못한 특허…전문가도 ‘이례적 결과’ 분석

산인공은 지난 2016년 ‘국가전문자격 출제관리시스템’(KEMS) 특허를 취득했다. 국가전문자격의 합격률 안정화를 목적으로 한 기술이다. 산인공 관계자는 KEMS가 세무사시험에서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객관식 시험에만 적용된다"고 답했다.

이같은 설명에도 일반적인 서술형 시험 채점 절차에 견줘 의문은 남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변호사시험을 비롯해 산인공 주관 변리사 시험의 출제위원을 역임한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세무사 시험의 결과값은 이례적"이라며 "대개 서술형 시험은 채점 기준이 있지만 수험생 일부의 답안지를 표본으로 먼저 분석, 채점위원 논의를 거쳐 기준을 다시 변경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과락 및 불합격률 등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비정상적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산인공의 시험 관리 업무 위탁 재검토를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모 세무사시험 유명 학원 강사는 "2009년까지 국세청이 주관했던 시험을 산인공이 가져가면서 논란이 부쩍 늘었다"며 "2019년에도 국세청 출신들이 시험문제를 미리 알았다는 의혹으로 홍역을 앓았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17일 "산인공에 시험관리 업무를 계속 위탁해야 하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목소리에 힘이 실린 배경은 산인공의 시험 관련 논란이 매해 반복되기 때문이다. <더팩트>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산인공 2017~2021.7 국가자격증시험 부정행위 적발현황 및 조치’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총 249건의 부정행위 등이 적발됐다. 단 사법처리로 이어진 사례는 0건이었다.

노동부는 오는 14일까지 산인공 감사를 진행한다. 감사원도 지난달 27일 안철수 후보와 세시연이 청구한 감사의 실시 여부를 검토 중이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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