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애 양평경찰서장이 22일 경기 양평군 옥천면 양평경찰서 서장집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검경수사권조정 이끈 차세대 리더…"여경 논란은 여경 혐오"
[더팩트ㅣ최의종·정용석 기자] "현행범 체포와 구속 기준은 증거인멸 가능성과 도주 우려지만, 이건 철저히 공판을 염두에 둔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수사가 검사의 수사였다는 반증일 겁니다. 이제 경찰 수사의 본질은 '피해자 안전'과 '공동체 평온'이 돼야 합니다."
2021년은 검경수사권개혁 원년이었다. 1954년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제정 67년 만에 형사사법제도에 대변혁이 실현된 한 해였다.
지난 22일 <더팩트>와 만난 이은애(47) 경기 양평경찰서장(총경)은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찰 수사의 본령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경찰 차세대 리더로서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수사구조개혁 1팀장으로 일한 뒤 지난 1월 양평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지도 어느덧 1년. 내년 초 인사를 앞둔 이 서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형사소송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뒤 현장에 복귀했던 이 서장은 수사권 조정이 큰 틀에서 안착했지만 아직 불완전한 점이 남았다고 느낀다.
"이번 수사권 조정은 검사가 수사와 사실상 재판까지 지배하는 현상이 공정한지 의문에서 시작해, 첫 관문으로 수사부터 바꿔나가는 개혁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법이 바뀌고 수사 실무까지 바뀌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서장이 느끼는 '불완전성' 중 하나는 불송치 결정에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다.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는데, 고소·고발인 이의신청에 따라 넘어간 사건을 송치 사건이라며 보완수사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보완수사를, 불송치 사건은 송부 자료를 검토해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불송치에 이의신청으로 송치된 사건도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것은 경찰 입장에서는 이미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을 뒤집으라는 취지라 난감하다는 의견이다.
"이의신청해서 송치된 사건은 검찰에서 처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보완수사 요구하는 건 국민 당사자 권익을 무시하는 걸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가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김병찬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임영무 기자 |
2021년을 되돌아보면 잔혹한 스토킹살인이나 교제폭력 사건이 적잖은 충격을 줬다. 현직 지휘관으로서 이 서장은 스토킹범죄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 신고 건수가 증가했다. 범죄가 새로 생겼다기보다는 숨겨졌던 데이터가 드러난 것이다.
"성폭력특례법 시행 이후에도 관련 범죄가 통계상 증가했습니다. 실재하던 범죄가 데이터 안으로 들어왔을 뿐, 시행 이후 없었던 범죄가 증가한 게 아니죠. 심각한 범죄인데도 관리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나 가족이 강력범죄 대상이 된 사건에 경찰 스스로 '관계 기반 폭력'에 대한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범죄, 스토킹범죄, 성폭력 범죄 등을 모두 '관계 기반 범죄'로 보고 초기부터 개입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간과하면 빠르게 강력범죄로 진화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이 서장은 현장의 생생한 사건들을 언급하며 관점의 정립을 강조했다. 이 서장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때렸다는 폭행 사건 보고가 올라오는데, 가정폭력은 여자가 어떤 잘못을 해서 남자가 때렸다는 식의 보고가 들어온다. 경찰이라고 특별히 인식이 부족하다기보다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의 허점도 개선이 시급하다. 피해여성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준 사건들도 혐의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종결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112 신고 중 일례로 트럭을 운전하던 남성이 퇴근하던 50대 여성을 향해 인도로 바짝 다가와 성적 모욕 발언을 해도 처벌할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장 대응력 강화를 위한 형사 면책조항 입법화가 추진되지만, 현장에서는 징계와 형사 처벌, 민사책임 등에 위축된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최근에도 50대 후반 숙련된 경찰관이 부득이하게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한 일이 있었는데, 큰탈없던 경찰 인생이 불이익을 받아 끝날 수도 있다는 걱정부터 앞섰다고 한다.
"태생 자체가 경비경찰 중심으로서 물리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를 성찰해 물리력 행사에 강화된 기준과 통제가 적용된 상태입니다. 과정보다 결과만을 놓고 완벽함을 요구하다보니 경찰에게는 위축감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이은애 양평경찰서장이 22일 경기 양평군 옥천면 양평경찰서 서장집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현장 대응력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 '인천 흉기난동 사건'은 경찰이 반성해야할 문제다. 별개로 관할 지역 '양평 여경 논란'처럼 본질과 동떨어진 '여성 혐오'도 작용한다. 2017년 이후 여성경찰관 비율이 5~6%에서 현재 12%까지 늘면서 여경 혐오도 급증했다는 의견이다.
근거 없는 비판을 받았던 해당 여경 역시 평소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경찰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확인도 되지 않는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가를 내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여경 논란은 여성혐오가 본질입니다. 여성에 낙인을 찍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상처를 입히고 사회에서 퇴출하려는 겁니다. 최근 112신고를 받고 여성경찰이 출동해 순찰차에 내리기만 해도 사람들이 카메라를 듭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한다면 훌륭한 여성은 경찰에 지원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서장은 이렇게 고착된 여성경찰 이미지를 깨는 역할을 자임한다. 경찰 '조직 내 성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성평등한 치안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경찰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의지로 2017년 여성 국회의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경찰젠더연구회' 조직에 앞장섰다.
초기에는 여성경찰 몇몇이 만나 책을 읽고 간담회도 열며, 조직 내 성평등을 위해 함께 고민했다. 점점 같은 생각을 하는 경찰관이 많아지면서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성평등한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저는 페미니스트 경찰관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일하는 여경들에게 힘이 되고, 성평등한 치안서비스를 어떻게 구현해나갈지 계속 고민하고 싶습니다. 향후 경찰 수사는 달라져야 합니다. 몇 명을 구속하는 것보다 국민의 생명과 공동체 평화를 지키는지가 '좋은 수사'의 기준이 되야합니다. 이제 수사 패러다임은 피해자 중심으로 바꾸고, 성평등한 치안서비스를 어떻게 수사 실무와 접합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