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암울한데…6.25, IMF 성탄절은 어땠을까
입력: 2021.12.25 00:00 / 수정: 2021.12.25 00:00
1977년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조용히 경건하게 보내자는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국가기록원 제공
1977년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조용히 경건하게 보내자'는 길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국가기록원 제공

일제강점기부터 외환위기까지 대한민국 성탄절 풍경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올해 성탄절은 감염병 걱정에 웃음이 줄어든 모습이다. 모임 인원 제한 등 방역지침 강화에 길거리는 물론 성당과 교회마저 한산해졌다. 이처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을 보낸 때가 언제 또 있었을까.

옛 기록들을 찾아보면 그런 크리스마스는 의외로 적지 않았다. 성탄절이 낯설게 느껴졌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때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에 이르기까지. 훨씬 암울했던, 지금 보니 우습기도 했던 옛 시절 성탄절이 있었다.

◆ 화이트(white)가 파이트(fight)로…‘싸우는 크리스마스’ 풍자

‘기독탄신일’로 불리며 성탄절이 생소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이날을 이념·사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 현재는 보수매체인 조선일보가 1925년 12월 25일 보도한 ‘크리쓰마쓰일’ 기사는 성탄절을 통해 민중혁명적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쓰여 흥미롭다.

"예수는 혁명적이었고 따라서 비타협적이었었다. 그러나 그가 목적하는 바는 평화에 있었다. 그러나 지상평화의 수단은 말하자면 정신에 두었었다. 이 점은 칼 마르크스와 반대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자체의 인격에 대하여는 경의를 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광복 이후에는 성탄절이 일반 시민도 즐기는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6.25 전쟁이 벌어진 탓에 가장 비참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말았다. 1951년 성탄절 동아일보의 ‘수난의 포성 속에 오늘 크리스마스’ 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오늘은 전쟁 중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다. 조국은 공산주의자들이 발발한 침략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돌아갔다. 이 전쟁을 승리로 종결짓기 위해 불면불휴 싸우는 전선의 용사들에게 후방국민이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보내자."

전쟁 후에는 성탄절을 즐기는 풍조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까 우려하는 시선이 따랐다. 찬송가처럼 ‘고요하고 거룩하게’ 보내야 할 밤이 유흥 등으로 점철됐다며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다. 1955년 성탄절 조선일보의 ‘크리스마스 부허한 풍조’ 기사는 한 예다.

"크리스마스라고 울타리 안에서 빠져나온 듯, 가는 곳마다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그 귀하다는 전기를 온밤 중 무제한으로 보내주는 것까지야 좋다. 그렇다고 밤새 술 먹고 춤추고 거리를 어지럽히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판은 오래 이어졌다. ‘화이트(white) 크리스마스’를 ‘파이트(fight) 크리스마스’로 풍자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성탄절이 지난 때지만 1964년 1월 17일 동아일보는 ‘싸움의 성탄절’ 기사를 통해 이같이 비평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러트 신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싸움의 성탄절로 들렸다고 한다. 성탄절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광란과 술주정으로 뒤끓기 일쑤인 한국적인 비극의 일면을 풍자적으로 또는 말장난으로 쓴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올해 성탄절은 감염병 걱정에 웃음보다 울상이 더욱 눈에 띄는 모습이다. 사진은 독일 크리스마스 트리에 산타 모양의 장식이 마스크를 쓴 모습./더팩트DB
올해 성탄절은 감염병 걱정에 웃음보다 울상이 더욱 눈에 띄는 모습이다. 사진은 독일 크리스마스 트리에 산타 모양의 장식이 마스크를 쓴 모습./더팩트DB

◆ 웃음 사라진 성탄절군부독재, 외환위기 때도

올해 성탄절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사면이 결정됐듯 과거에도 이날은 특사에 관심이 쏠리는 시기였다. 특사의 적정성을 놓고 말들은 늘 많았지만, 옛 특사 관련 소식들을 읽으면 엄혹했던 그 시절 분위기가 엿보인다. 1981년 12월 24일 경향신문 기사는 이렇다.

"정부는 크리스머스를 맞아 광주 사태 관련자와 김대중 등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등을 포함해 1113명의 모범수를 가석방한다. 이종원 법무부 장관은 ‘이번 특사는 정의로운 민주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이 물러난 직후의 성탄절 표정도 마냥 좋진 않았다. 시민 힘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고 선거까지 무사히 치렀으나, 그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지역 갈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개운치 못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1987년 경향신문의 ‘성탄절과 가난해진 마음’ 사설이다.

"격동의 87년이 저물어간다. 우리 사회는 올해 많은 모순을 드러냈다. 폭력·계층·지역·세대·종교·지연·혈연·학연이 뒤엉킨 중세적 당파성 등이 아주 극심하게 노출됐다. 예수 오신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성탄 메시지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IMF 직후를 다시 보면 어떨까. 불과 20여 년 전이지만, 날짜를 가리고 보면 한참 먼 옛날의 풍경을 묘사한 듯한 기사가 여럿 남아 있다. 1997년 성탄절 매일경제의 ‘IMF 한파에 얼어붙은 세밑온정’ 기사다.

"성탄절과 함께 세밑을 맞았지만 선물꾸러미는커녕 썰렁하기 짝이 없다. IMF 한파 등의 영향으로 이혼하거나 자살하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을 고아원이나 아동복지시설에 맡기는 사례조차 늘고 있다. 이래저래 올 세밑에는 몸도 마음도 얼어붙고 있다."

올해 성탄절도 이들 기록과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에 정부가 ‘비상상황’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 전쟁 때도 이뤄졌다는 성당 미사와 교회 예배마저 방역지침에 따라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성탄절을 앞둔 연말임에도 전체 이동량이 줄고 있다"며 "방역강화 조치 이후 하루 확진자 수는 7000명 내외에서 주춤하고 있어도 아직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함께 힘을 모아 공동체적 위기를 극복한다는 마음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민들은)코로나19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대형병원보다는 의료여력이 남아 있는 병·의원을 찾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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