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코로나 이중고…집도 백신도 거부하는 노숙인들
입력: 2021.11.28 00:00 / 수정: 2021.11.28 00:00
25일 오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종이 박스와 텐트 등을 이용해 거처를 마련한 모습. /정용석 기자
25일 오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종이 박스와 텐트 등을 이용해 거처를 마련한 모습. /정용석 기자

'통제받기 싫다' '살인백신 왜 맞냐'…전문가들 "자립의지 키워줘야"

[더팩트ㅣ정용석 기자] 늦가을 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4000여 명에 육박했다. 길 위의 노숙인들은 한파와 코로나19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주거비 지원이나 백신 접종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도를 기록한 지난 25일 오전 10시쯤 서울역 인근. 노숙인 강모(55) 씨는 "소주나 한 병 사달라"고 했다. 추위를 취기로 이기겠다는 얘기다. 강 씨와 함께 무리를 지은 노숙인 3명도 "올해는 유난히 추위가 일찍 찾아왔다"고 했다.

이들은 종이 상자를 바닥에 깔고, 거리에서 주워온 겨울철 옷가지를 이불 삼아 추위를 버텨왔다고 했다. 강 씨 일행 인근에는 텐트를 치고 솜이불을 마련하는 등 거리의 겨울나기 준비를 마친 노숙인들도 보였다.

◆"통제받는 삶 싫어" 정부 지원 외면

노숙인을 보호하고 자활을 돕기 위한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서울시는 거리 노숙인에게 임시주거비지원사업으로 월 27만원 가량을 지급한다. 내년부터는 지원단가를 32만7000원으로 올리기 위해 시의회의 예산안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시는 노숙인을 위한 일시보호시설도 네 곳을 운영 중이다. 노숙인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다친 곳을 치료받을 수도 있고 샤워도 가능하다.

그러나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이러한 시설에 관심이 없거나 이용을 거부했다. 통제받는 삶이 싫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도 비슷했다. 지난 1월 서울역 등을 중심으로 노숙인 수십 명이 집단 감염되는 사태가 일어난 이후, 질병관리청이 노숙인을 ‘코로나 취약계층’으로 분류했다. 이에 시는 찾아가는 백신 접종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성과가 좋진 않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접종 대상 서울 노숙인의 완료율은 37.6%에 그쳤다. 백신 접종을 위해선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상당수는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이날 서울역 노숙인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턱에 걸쳤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노숙인이 대부분이었다. 강 씨의 일행인 김모(60) 씨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사를 묻자 "살인 백신을 맞고 죽으라는 말이냐"며 "나라가 시키는 건 하지 않는다"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노숙인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 이들의 자립을 돕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팩트 DB
전문가들은 노숙인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 이들의 자립을 돕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팩트 DB

◆전문가들 "충분한 지원과 관심 필요"

노숙인들이 정부·지자체의 지원을 거부하고 거리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숙인 지원사업 관계자들은 이들의 좋지 않은 정신적·육체적 건강상태를 이유로 꼽았다. 나쁜 건강상태가 이들의 자립 의지를 꺾는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노숙인의 18.7%가 고혈압, 당뇨 등 대사성 질환을, 18.6%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거리 노숙인의 무려 69%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조사됐다.

특히 전체 노숙인 중 음주자는 약 40%나 됐다. 이 가운데 매일 술을 마시는 경우도 18.5%로 나타났다.

노숙인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시의 지원을 받지 않는 분들은 대부분 알코올에 중독된 상태이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이 많다"며 "적극적인 의료 지원을 통해 자립 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11명의 정신건강 전문요원을 배치해 운영 중"이라며 "만성적 정신질환을 앓는 노숙인들을 지원해오고 있고, 많은 분들이 치료를 받고 지역 사회에 복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을 구제할 안전망이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올해 초 노숙인 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례를 들며 "제대로 된 임시주거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활동가는 "수십 명이 함께 자는 일시보호시설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을 가중시킬 뿐"이라며 "겨울철에 한시적으로라도 개별 화장실이 갖춰진 1인 1실 형태의 격리된 시설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의 백신 접종율을 높이려면 노숙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의료시설을 확대해야 된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노숙인들은 비용 등 문제로 지정된 병원만 이용할 수 있는데, 생활권과 떨어진 경우가 많아 즉각 치료를 받기 힘들다"며 "방역정책에서 소외된 노숙인들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y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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