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포함 닷새 동안 주어진 연휴가 인천국제공항 송환대기실 노동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뉴시스 |
예측불허 돌발상황에 초긴장 연속…고용불안까지 가중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명절에도 일하는 게 낫죠. 내년 명절에도 일할 수만 있다면요."
주말 포함 닷새 동안 주어진 연휴가 인천국제공항 송환대기실 노동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공항이 문을 닫지 않는 한 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힘든 이유는 따로 있다. 속한 회사와 공항의 용역 계약이 올해로 마무리되는 탓에 내년 명절에는 일터에 나올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서다.
특히 ‘출입국관리법’ 개정으로 송환대기실 관리 주체가 기존 용역업체에서 ‘국가’로 바뀌었지만, 법 시행이 내년 8월로 유예되면서 고용불안이 더욱 심해졌다.
공항 송환대기실은 입국 허가를 못 받은 외국인이 본국 등지로 떠날 때까지 임시로 머무는 공간이다. 전국 9개 공항·항만에 설치됐다.
출입국 관련 업무를 하는 만큼 국가가 운영할 듯하지만, 민간 항공사가 연합해 만든 ‘항공사운영위원회’(AOC)가 관리 주체다. 그마저도 실질적인 살림은 하청업체가 도맡았다.
인천공항의 송환대기실을 관리하는 회사는 ‘프리죤’. 이곳의 김혜진(50) 팀장은 지난 8년 동안 일하며 명절에 가족을 만난 기억이 많지 않다.
"오히려 명절에 더 바쁘죠. 공항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때잖아요. ‘비상태세’로 돌입하거든요.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해요. 순간적으로 대처할 일이 잦다 보니까 관리자들도 긴장하고 일해야 해요."
이번 명절은 특히 더 분주할 수밖에 없다. 직원 5명이 최근 잇따라 퇴사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높은 노동강도, 고용불안, 저임금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일손이 부족해진 송환대기실 직원들은 맞교대로 일한다. 오전 팀은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오후 팀은 4시에 나와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강행군을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김 팀장은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구조라 어쩔 수 없이 저와 함께 출근해야 하는 팀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실제로 이번 명절에 출근한 직원들의 걱정은 크다. 올해가 아직도 3달가량 남았지만 여태까지도 아찔한 순간들을 많이 겪었던 탓이다.
입국이 불허돼 송환되길 기다리는 외국인 승객들은 대개 불만이 많다. 따라서 사소한 일로 직원들에 시비를 걸고, 심지어 폭행하는 사례도 있다. 발작증세와 함께 응급환자가 발생한 일도 적지 않았다.
비일비재한 예측불허 상황이 한 직원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뻔한 일도 있었다.
40대 A씨는 지난 2019년 자해소동을 벌인 외국인 승객을 밤새 말렸는데, 하마터면 ‘전과자’가 될 위기를 겪었다.
내막은 이랬다. 그해 9월 28일 정신질환을 앓은 말레이시아인 남성이 인천공항 3층의 한 벤치에서 속옷만 입은 채 난동을 부리고 다음날까지 종일 자해를 시도했다.
국정원과 법무부 및 경찰과 인천공항의 직원들이 합세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송환대기실 직원 3명이 그를 호텔로 옮겨 이틀을 꼬박 돌봤는데, 이 외국인 남성은 발작으로 끝내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A씨 등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호텔로 옮긴 것을 ‘감금’, 자해를 막으려 손을 묶은 것을 두고 ‘포박’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2년 넘게 사건을 묵혀오다 지난 7일에야 박씨 등을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으로 종결했다.
A씨는 "그동안 생계위협과 정신적인 고통도 감수하고 근무를 해왔다"며 "명절에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희망을 갖고 출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혜진 팀장(사진)이 '구두로만 약속 말고 고용보장 명문화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정부에 목소리를 냈다./김혜진 프리죤 팀장 제공. |
지난 7월 국회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송환대기실 관리 주체를 기존 용역업체에서 국가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은 공무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는 남아 있다. 김 팀장과 A씨는 오히려 "내년 명절에도 부디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법 시행 시기가 내년 8월이라 문제다.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을 맡아온 프리죤의 용역 계약은 올해 12월까지다. 그리고 이곳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현재까지 정부 어느 쪽도 약속하지 않고 있다.
김 팀장은 "송환대기실에는 수년 동안 일해온 사람들이 지금도 상주하고 있는데, 굳이 내년에 법을 시행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직원들 입장에서는 고용불안만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A씨도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누구도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며 "당장은 정부와 국회에 읍소하는 방법 말곤 떠오르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김 팀장과 A씨는 내년에도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국회 관계자는 "송환대기실 직원들의 열악하고 불안정한 상황은 많이들 알고 있다"며 "일단은 공항 출입국 관련 주무부처인 법무부에 적어도 향후 1년 고용유지를 부탁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다뤄 재직 중인 송환대기실 노동자들의 공무직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의원들이 힘을 보탤 것"이라고 부연했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