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방송' 인기 서울교통공사 유진옥·박진호 기관사
[더팩트|이진하 기자] "지금 뚝섬유원지역. 7호선 열차 기관사가 열차 내 방송으로 하루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승객들에게 수고했다는 멘트와 지금 바깥 날씨 등을 알려주네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들이 참 좋습니다. 7호선 지하철에서 감동을 받았네요." (누리꾼 A)
"지하철 기관사님이 방송으로 행복 앞에선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감동이야. 열차 안에서 마음이 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이시는데 오늘 힘든 거 다 녹는다." (누리꾼 B)
지친 시민을 위로하는 서울 지하철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인기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소셜미디어) 등에는 지하철 감성방송을 들은 시민의 칭찬글이 이어지고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로 무장해야 하는 시민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더워지는 날씨 탓에 출퇴근길이 더욱 힘겹다. 덜컹덜컹 소음 속에서 들려오는 기관사의 감성방송은 단비 같은 위로다.
직접 쓴 원고로 출퇴근길 승객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시민의 발' 서울교통공사 박준호 동작승무사무소 차장과 유진옥 신풍승무사무소 기관사가 바로 단비를 뿌리는 사람들이다.
◆ 마음을 전하는 방송, 진심이 통하는 방송
7호선에서 감성방송을 하고 있는 유진옥(49) 기관사는 2006년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인 35세에 입사했다. 어느덧 올해 15년 차다. 20대 다른 직장을 다닐 때부터 지하철 방송을 꿈꿨다.
"첫 직장을 다닐 때 2호선을 탔어요.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이럴 때 방송을 하면 시민들이 편리하고 힘이 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기관사를 하게 됐어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기관사는 유일하게 나이를 보지 않는 곳이었죠."
그의 방송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서두르다 놓치기 쉬운 일기예보, 계절의 변화, 잔잔한 인사 등이다. 거창한 것보다는 '마음'을 전하려 노력한다.
7호선 열차를 운행하는 유진옥 기관사는 올해 15년 차로 출퇴근 시간 감성방송으로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유진옥 기관사 제공 |
4호선 열차를 운행하는 박준호(31) 차장은 입사 3년차다. 4호선 사당행 열차에서 듣게 된 한 기관사의 방송에 매료돼 서울교통공사에 지원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싶었다는 박 차장. 우연히 탄 사당행 열차가 '인생의 노선'을 결정했다.
"열차 방송에서 '차 안에 물건을 두고 내리시면 해당 물건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 수 있으니 내리실 때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 달라'는 멘트가 나왔어요. 저절로 미소를 짓게됐죠. 다른 승객들도 맞장구를 치며 재미있어했고요. 그래서 나도 나중에 이런 방송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방송이 막막하기도 했지만 앞서 감성방송을 시작한 선배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전문 DJ는 아니지만 감성방송을 시작한 후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좋았던 구절들을 적어놓는다. 선배들의 노하우와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한 방송 코멘트를 만든다.
◆ 시민들의 엄지척에 자부심 '만렙' 느끼는 감성방송러들
이들의 감성방송은 쌍방향이다. 기관사와 승객이 서로 행복을 주고 받는다.
고맙다며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을 한 줌 쥐어주시는 할머니, 위로받고 공감했다며 음료수를 건네주는 시민들. 유진옥 기관사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다.
"주로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가끔 열차에 내려 운전석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거나 미소를 보내주시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아 내 진심이 통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저도 위로받게 되죠."
박 차장은 시민들이 온라인에 올려준 '칭찬의 글'을 보고 기관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승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교통공사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시는 글을 보면 정말 기뻐요.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받은 감정들이 지금까지 감성방송을 하고 쾌적한 열차 환경을 제공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4호선을 운행하는 박준호 차장은 우연히 들은 지하철 방송을 계기로 감성방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준호 차장 제공 |
승객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터널을 달리다 보면 문득 코로나19가 생각난다.
기관사의 삶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 아무리 길고 칠흙같더라도 끝없는 터널은 없다.
"끝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코로나지만 분명 끝이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모두가 희망을 잃지 마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