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도우미' 덕에 혼란은 없지만…사회적 합의 주목[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우리도 저녁있는 삶을 원합니다."
과로사 방지 대책을 촉구하면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가 분류작업을 거부하고 '9시 출근·11시 배송출발' 행동에 들어간 지 이틀째인 8일 오전. 서울동남권물류단지에는 택배기사들을 대신해 형광 엑스밴드를 착용한 도우미들이 분류작업에 투입됐다.
사측에서 고용한 도우미들 덕분에 현장에서 큰 혼란은 없었지만 대부분 기사들은 분류작업을 과로사 원인으로 꼽으면서 노조의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9시 출근 11시 배송출발' 행동에는 전국 5만여명의 택배기사 중 노조 소속 6500여명의 기사가 참여 중이다.
소속 기사들의 택배노조 가입률이 비교적 낮은 한진택배는 분류작업에 큰 차질이 없는 편이었다. 보통 새벽 5시께 집을 나선다는 기사들은 분류작업에 묵묵히 임하면서도 택배노조의 단체행동에는 공감했다.
13년 경력의 한진택배 소속 기사 김모(70) 씨는 "(분류작업은) 사실상 무보수 추가 근무"라면서 "사회적 합의에서 중요한 것은 단가를 높이는 것이다. 1차 합의 이후 택배사에서 요금을 올렸다고 하지만 기사에게 돌아오는 수수료는 적다"고 지적했다.

이곳 물류단지의 롯데택배 기사들의 경우 노조원과 비노조원으로 양분됐다. 이직 때 불이익을 받을까봐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롯데택배 기사 김진현(31)씨는 "분류작업 중단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를 마음으로 지지한다"고 전했다.
노조 소속 기사들이 분류작업을 그만 둔 롯데택배 일부 구간에는 형광 엑스밴드를 찬 도우미들이 분류작업을 대신했다. 이들은 택배회사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하루 12시간 동안 자동화 기계에서 분류된 물품을 지역별로 재분류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일당으로 13만원을 받는다. 도우미들 덕에 현장에서 큰 혼란은 없었다. 다만 택배기사들은 도우미 고용이 대안은 아니라면서 제대로 된 개선책을 요구했다.
분류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된 오전 9시께 집단행동에 참여한 택배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집단행동에 동참한 이유에 대해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8년 경력의 롯데택배 소속 정창진(50) 씨는 "분류작업 하나만이라도 해결된다면 수월해진다. 평소 분류작업으로 배송이 지연돼 새벽까지 일하던 걸 저녁 7시면 끝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고영준(46) 씨도 5년 경력을 되돌아보며 "일한 만큼 대가와 권리를 찾고 싶다. 1차 합의에서 '분류작업'이 택배사 책임이라고 약속했으면 이행해야 한다. 남들처럼 우리도 저녁의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노사정·국회·소비자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는 이날 오후 2차 합의안 채택을 시도한다. 지난 1월 합의에서 분류작업의 책임을 택배사라고 명시한 만큼, 2차 합의안에서는 분류 인력 비율과 시점 등이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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