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5인 이상 모임 안됩니다"…단속 10분 만에 또 술자리(영상)
입력: 2021.06.03 05:00 / 수정: 2021.06.03 05:00

대학생 사고·코로나에도 밤을 잊은 한강공원…서울시 금주지역 추진 '무색'

[더팩트|이진하 기자] 서울시가 최근 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사건을 계기로 한강공원 내 금주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공원 내 취식 자제를 권고하는 등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대학생 사망 사건 이후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한강공원을 금주지역으로 정하고 CCTV를 더 추가해달라"는 등 한강공원 내 음주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이와 함께 시는 10월 15일까지 '2021 여름철 종합대책'의 하나로 한강공원에서 거리두기 안전문화 캠페인을 벌인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야외활동하기 좋아진 날씨 탓에 한강공원에는 한밤중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 대학생 사건 직후 '반짝효과' 반포…영향없는 뚝섬·여의도

지난달 15일 자정을 넘긴 뚝섬한강공원. 서울시가 한강공원에서 거리두기 안전문화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발표한 날이다.

20~30대 시민들이 저마다 돗자리, 캠핑 의자를 가지고 나와 잔디밭에서 음주를 즐긴다.

수도권 내 6개월 넘게 진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로 다들 지친 모습이다.

최근 대학생 사망 사건 등 안전 문제도 불거졌지만 시민들은 식당 영업이 마감되는 오후 10시 이후 여전히 한강공원을 찾았다. 30대 직장인 김 모씨의 말이다.

"식당이나 술집이 10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한강공원을 찾게 됐어요. 그래도 실외는 실내보다 감염 위험이 적지 않을까 생각해서 큰 걱정 없이 나왔죠."

대학생 박 모씨는 날이 좋아져서 친구들과 나들이를 나왔다.

"반포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난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한강공원을 나오는 걸 꺼리진 않아요. 다만 부모님이 걱정해 곧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같은 날 밤 1시를 넘어 찾은 반포한강공원. 대학생 사망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지 않아서일까. 시간이 늦어서일까. 뚝섬한강공원 만큼 시민들이 많지 않았다.

안타깝게 숨진 대학생이 들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편의점도 불이 꺼진 상태였다.

그러나 휴일이던 지난달 19일 저녁과 22일에서 23일로 넘어가는 밤 1시께는 다른 세상이었다. 반포한강공원부터 뚝섬한강공원, 여의도한강공원까지 하나같이 북적거렸다.

5인 이상이 함께 음식을 먹는 일행도 쉽게 눈에 띄었다.

밤 2시가 넘어도 편의점 간판에 불은 꺼지지 않았다. 반포한강공원 내 편의점 직원의 말이다.

"평일에도 10시가 넘으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고 보통 3시에 문을 닫는데 그 시간까지 몇몇 분들은 술이나 간식을 사가기도 해요. 주말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사람들이 몰려와서 더 늦게까지 영업하고요."

뚝섬한강공원 내 편의점 직원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이니까 쉬지 않고 영업하고 주말에는 낮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정신이 없을 지경이죠. 날씨가 좋아지면서 평일 저녁에도 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많다 보니 3~4월 때 보다 매출도 대략 20% 정도 올랐어요."

날씨가 따뜻해지자 시민들은 한강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취식하는 등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이선화 기자
날씨가 따뜻해지자 시민들은 한강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취식하는 등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이선화 기자

◆단속 비웃는 '5인 이상 술자리'강제 권한 없어 한계

주말인 16일과 23일 자정을 넘긴 한강공원 곳곳에는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취식 자제' 등의 현수막이 보였다.

시민들은 캠페인이 무색할 정도로 많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편의점 앞에는 수십 명의 시민들이 주전부리를 사서 일행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23일 자정을 넘긴 여의도 한강공원도 마찬가지였다.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밑에는 가족 또는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일부는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5인 이상 모임을 하고 있었다.

밤 1시께 '한강사업본부' 마크가 붙은 차량 한 대가 여의도 한강공원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단속 차량은 불빛이 거의 없는 나무 사이 5인 이상 모임을 하던 20~30대 일행 앞에서 멈춰섰다. 시민들은 당황해하며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은 안 됩니다."

직원들은 현장 사진을 찍은 뒤 돌려보냈지만 잠시였다. 시민들은 10분 정도 지나자 단속을 피해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술자리를 이어갔다.

현장 단속 중 만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소속 청원경찰은 계도 이상 강제 권한이 없어 실질적인 단속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실제 과태료를 물리려 하면 시민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끝까지 신분증을 내놓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방역수칙을 위반한 현장을 발견해도 강력한 조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단속이 어렵고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뚝섬 한강공원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진하 기자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뚝섬 한강공원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진하 기자

◆ 전문가 "흡연보다 음주가 피해 더 심각인식 개선 필요"

서울시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에 따라 음주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밀집 장소 금주구역 지정을 검토 중이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금연구역 설정 등 흡연과 관련된 인식 개선에도 10년이 걸렸기 때문에 음주 관련 인식 개선도 오래 걸릴 것"이라며 "현재 금연 정책과 관련된 정부 예산은 100억 원 대로 책정됐으나 절주에 필요한 예산은 1/10 수준인 13억 원 정도여서 캠페인 등을 주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삼육대 한국보건사업평가연구소가 2018년 발표한 '음주문화 특성 분석 및 주류 접근성 개선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50개주 중 35개주가 공공장소에서 음주행위를 금지한다.

영국은 음주행위 외 주류 판매도 규제한다. 술집, 레스토랑, 가게 등은 관할 당국 허가를 받고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주류를 팔 수 있다.

이밖에 잉글랜드 및 웨일스 지방에서는 공공장소 내 음주가 허용된다. 다만 공공장소지정법에 따라 타인 혹은 주변에 피해를 주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할 것이라고 판단될 때 경찰이 음주를 제한할 수 있다.

손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금연구역이 만들지는 등 인식이 개선되면서 금주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됐다"며 "흡연보다 음주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 공공장소 음주 규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jh31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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