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호 동창 "정 많던 내 친구...사고 막을 수 있었다"
입력: 2021.05.14 18:31 / 수정: 2021.05.14 18:31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고인의 부친 이재훈씨가 고인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최의종 기자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고인의 부친 이재훈씨가 고인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최의종 기자

사고 원인 규명 촉구하며 빈소 지켜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선호 아버님과 친구들은 일상을 포기하고 사건을 알리려고 했어요. 하루에도 6~7명이 산재로 죽는데 주변 사람들이 일상을 포기해야 주목받는 사회라는 게 두렵습니다."

고 이선호(23) 씨의 고등학교 동창 김벼리(23) 씨는 지난 13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뒤늦게 사고가 조명돼 안타깝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4시 10분께 평택항 수출입화물보관 창고 앞 컨테이너에서 내부 작업을 하던 중 300kg이 넘는 개방형 컨테이너(FRC) 날개에 깔려 숨졌다.

인력업체 '우리인력' 소속이던 이씨의 업무는 동식물 검역 하역작업이었다. 그러나 3월부터 인원 감축으로 원청과 하청업체 직원들은 업무 구분 없이 일하게 됐다. 이씨도 원청업체 '동방'의 요청으로 컨테이너 작업을 처음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장례 절차를 마무리 짓지 않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친구들도 4~8명씩 빈소를 지킨다. 친구들은 지난 8일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고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씨에게 이씨는 '정 많고 친구들을 굉장히 아끼는 친구'로 기억된다. 김씨는 "선호의 친구 어머니 중 교복 가게를 운영하던 분이 계셨는데, 손님이 없을 때 심심해하실까 봐 30분 넘게 말동무를 해줬다고 한다"고 밝혔다.

또 가족에게 이씨는 애교 많은 아들·동생이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고모와도 친해 항상 술친구를 해줬다고 들었다"라며 "용돈을 벌어 예뻐하던 조카들에게 장난감 등을 사줬다고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수많은 순간이 있었다는 게 안타깝다. 그는 "하청에게 일을 시킨 불법 파견이 없었다면, 사전안전교육을 했더라면, 시설물 안전점검을 했더라면, 안전관리자가 있었다면, 다단계 하청 구조가 없었다면 선호는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산업재해에 경각심을 갖는지 의심되는 이유다. 김씨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산재 사망률 1위"라며 "하루에 6~7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정부와 국회가 무섭게 받아들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의종 기자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의종 기자

이날 오후 7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기획으로 '고 이선호씨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자리에 참석한 아버지 이재훈 씨는 "사고 원인은 원청에서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안전요원을 투입하지 않은 것"이라며 "하루 10만원만 들이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10만원 아껴서 얼마나 더 부자가 되려고 하냐"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이씨와 함께 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용균이 사고와 너무 흡사한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울분의 마음으로 빈소에 다녀왔다"며 "그동안 산업재해를 막겠다고 노력했는데 효과가 없어 죄송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에 재발 방지 대책도 촉구했다.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위험한 일터에서 매년 노동자들이 죽어 가는데 정부든 국회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문화제가 끝난 후 시민들은 장미꽃을 컨테이너 모형에 꽂으며 이씨를 추모했다. 장미꽃에는 '사람의 생명을 무시하는 사회를 걷어내고 희망을 만들자'는 의미가 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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