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 아파트 택배대란' 3주째…"다 같이 불편해요"
입력: 2021.04.22 00:00 / 수정: 2021.04.22 00:00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택배기사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최의종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택배기사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최의종 기자

주민들 "사과해야 대화" vs 택배노조 "총파업 불사"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1. 20일 오후. 5000세대가 사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입구에는 파란색 천막 하나가 있다. 택배기사들은 아파트 측에 대화를 요구하며 지난 16일부터 매일 오전 10시~오후 8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낮 기온이 오르자 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화장실은 인근 지하철역과 상가를 이용한다.

#2. 같은 시간. 인근 중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고 아파트를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이동한다. 단지 안 놀이터는 7~8명의 아이로 북적거렸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은 이웃과 담소를 나눴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도 많았다. 유모차를 끌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주민들도 눈에 띈다.

지난 1일부터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막은 아파트에는 상가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입주민대표회의(입주민회의)와 택배기사들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3주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최의종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최의종 기자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지난 14일 입주민 회의에 대화를 촉구하며 개별 배송을 중단했다. 2.7m가량의 일반 차량이 2.3m 지하주차장 입구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아파트 측이 요구한 저상차량 개조는 체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입주민회의는 택배노조가 '갑질' 프레임으로 아파트 주민들을 매도했다며 사과 없이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택배기사들은 주민들의 과도한 항의 문자·전화로 개별 배송을 중단한 지 하루 만에 재개했다.

택배 문제 고려하지 않은 공원형 아파트 설계

저상차량의 높이는 1.27m다. 흔히 택배기사들이 이용하는 차량보다 5.3m 정도 낮다. 하루에 300~500개 물량을 상·하차하는 과정에서 비좁은 공간에 몸을 숙여야 한다. 허리나 무릎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무릎에 굳은살이 잡히는 건 다반사다.

일반 차량을 이용하면 손수레가 필요하다. 하지만 손수레로 옮기면 평균 배송 시간보다 2배가 걸리고 노동강도 역시 상당하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더욱 힘들다.

택배노조가 이달 초 남양주 다산신도시 택배기사들에게 받은 제보 내용도 비슷하다. 한 택배기사는 "저상차량을 사용한 뒤 고관절 등에서 통증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택배기사들은 아이들의 안전은 공감하지만, 그만큼 더욱 상생 차원에서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정찬관 택배노조 조직2국장은 "공원형 아파트의 취지는 공감한다"며 "택배기사들을 설계 계획에 포함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택배기사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주민들도 있다. 입주 때부터 살았다는 한 주민은 "해결점을 찾으려면 결국 지상에서 시속 10km로 운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도 "비용을 모아 전동카트 등을 마련해 합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들이 지난 14일 개별 배송을 중단했다. /이동률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자 택배 기사들이 지난 14일 개별 배송을 중단했다. /이동률 기자

차 없는 아파트라서 입주했다는 주민들

입주민회의는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거부한다. 이들은 아파트가 설계부터 '차 없는 아파트'였고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점을 보고 입주했다고 입을 모은다.

명절 연휴 때 물량이 많은 점을 고려해 1년의 유예기간도 줬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1년 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일반 차량이 지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입구를)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 수 없다"라고 밝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주민은 "아이들이 차량을 피해 다닐 필요가 없어 입주했다"며 "입주민회의가 강경한 이유도 (지상 진입을 허용하면) 아파트 매력이 떨어질 걸 걱정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70대 한 주민도 "이 아파트의 가장 큰 메리트가 아이들이 차량이 다니지 않는 지상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것"이라며 "택배기사들의 잘못도, 주민들의 잘못도 아니다. 설계 당시부터 차량이 진입할 수 없게 지어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초등학생 학부모인 주민은 "안전을 위해 차량 크기를 줄이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을) 지원해줘야 한다"라며 "어렵다면 주민들이 십시일반하면 쉬울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20일 오후 CJ대한통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최의종 기자
전국택배노동조합이 20일 오후 CJ대한통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라고 촉구했다. /최의종 기자

커지는 택배사 책임론에 총파업 등 강경투쟁 예고

택배노조는 택배사가 기사들을 빼놓고 주민들과 일방적으로 협의해 사태를 키웠다며 책임을 묻는다.

지난 20일에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측과 저상차량 지하진입을 합의한 CJ대한통운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며 강신호 대표이사와 지역 대리점장을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5일 대의원대회에서는 투쟁계획을 논의한 후 총파업 등 강경 투쟁에 돌입할 방침이다.

주민들도 최악의 상황은 바라지 않는 분위기다. 한 주민은 "다 같이 불편하지 않나. 조금씩 서로 양보를 해서 해결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민들도 지상에서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텐데 공원형 아파트라 해서 차량의 지상진입을 100% 금지하는 건 적절치 않다"라며 "향후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공원형 아파트를 만들 때는 지상의 일정 공간에서는 차량이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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