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관련주?…'개미 죽이는 정치테마주의 실체' [탐사이다]
입력: 2021.02.17 07:00 / 수정: 2022.11.08 21:46

[더팩트ㅣ탐사보도팀] 오는 4월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와 함께 차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력 정치인들과 관련된 ‘정치 테마주’가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후보자 당 평균 관련 테마주는 무려 4~5개에 달하기도 합니다. 너도나도 관련주를 자처하는 수많은 기업들. 과연 이 정치인 테마주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안철수 테마주’의 단골 종목은 안랩 외에도 써니전자가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안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하자 주가 상승이 나타났는데, 지난달 7일에는 출마 선언일과 비교해 약 30%가 상승했습니다.

[써니전자 관계자 인터뷰: 저희가 의도치 않게 테마주에 편입된 거라서 아무 상관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주 과거에 한 5년 이상 되셨죠. '안랩 연구소'쪽에 계셨던 분이 저희 쪽 경영진으로 계셨던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테마주가 형성이 된 거 같고요. 그 이후에는 그분이 퇴사를 하신지 한참 되셨거든요.]

다음으로 박영선 전 장관의 테마주로 주목받고 있는 '캐리소프트' 입니다. 이번에는 후보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캐리소프트는 이 회사의 대표가 박영선 장관과 서강대 동문이라는 점과 박 장관의 과거 지역구였던 구로구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테마주에 편입됐습니다. 캐리소프트는 박 장관이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저울질하던 지난해 말부터 급등, 급락을 반복했습니다.

[캐리소프트 관계자 인터뷰: (테마주로 묶여) 온라인에서 나오는 말이 내부적으로 거론되거나 저희 대표님이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달 13일 서울시장 출마를 발표했는데, 발표를 하자마자 대학 동문이 대표로 있는 통신업체 한창의 주가가 극심하게 움직였습니다.

[통신업체 한창 관계자 인터뷰: 예전에 나경원 씨....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같이 묶였었는데 다른게 아니고 사장님과 서울대 법대 동기여서 그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 그렇게 연관 지은 거 같습니다.]

오세훈 후보의 테마주인 진양산업은 지주사인 진양홀딩스의 양준영 부회장이 오 전 시장과 대학 동문이기 때문입니다.

[진양홀딩스 관계자 인터뷰: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뭐 일면식도 없으셨다고 제가 알고 있었는데. 그냥 '같은 학교였다' 이걸로 묶인다는 게.]

대선 후보자들의 관련주들 역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표가 후원회 전 회장(이재명, 수산아이앤티)이거나 계열사 전 대표가 친동생(이낙연, 남선알미늄), 회사 대표가 후보의 대학 동문(윤석열, 덕성), 회장이 종친(정세균, 수산중공업)이라는 이유 등 애매한 연결고리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휩쓸리고 있습니다.

[수산아이앤티 관계자 인터뷰: 저희 사업과 이재명 지사하고는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남선알미늄 관계자 인터뷰: (이계연 전 삼환기업 대표가) 과거에 저희 그룹에 재직하실 때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아직까지 테마주로 엮여 있는데 이낙연 당대표의 친동생이 (회사를) 옮기셨거든요.]

[덕성 관계자 인터뷰: 공시로 발표를 했거든요. 상관이 없다고.]

[수산중공업 관계자 인터뷰: 외부세력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쪽에서 자발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지난 선거들을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이낙연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민주당이 압승을 했지만 남선알미늄의 주가는 오히려 급락했습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선거를 10일 정도 앞두고 하락세를 보이더니 총선이 끝난 후에도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의 일입니다.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유력 대선주자의 인맥과 정책 관련성에 대한 풍문을 유포해 주가조작을 벌여온 투자자들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요인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누군가 챙긴 이익만큼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정치 테마주 피해자 인터뷰: 제가 '안랩'을 매매를 한 게 2018년도, 그때 이제 시장 후보로 안철수가 막 떠오를 때 1,200만 원 정도를 매수했죠. 10월쯤에 제가 마이너스 50%?]

그렇다면, 가장 큰 규모의 주식시장인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해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으로 미국 주식시장 역시 크게 들썩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 주식시장에는 정치인 테마주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책' 테마주만 존재할 뿐입니다.

당시 뉴욕 증권가에서는 바이든 당선 핵심 수혜주로 친환경·헬스케어 기업을, 트럼프 연임 수혜로는 IT·제조업·금융 기업을 각각 꼽았습니다. 후보의 정책 위주 수혜주들이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바이든 관련주로 묶인 종목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기업의 임원 중 한 명이 바이든과 동문이라는 이유가 전부입니다. 물론 같은 시기에 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테마주라 불리는 종목들은 코스피 대형주는 거의 없고 대부분 코스닥 중소형주가 주를 이룹니다. 그럴수록 일부 투자자들이 테마주라는 풍문을 퍼뜨리며 주가를 올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곽승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치 테마주 가지고 주식을 사서 이익을 본다는 게 아주 어려울 거 같다는 판단이 듭니다. 각 후보들의 정책이 뭔지 경제 철학이 뭔지 확실히 나와 있으면 그러면 우리도 약간 (투자가) 가능하겠죠?]

[한국거래소 관계자: 투자를 하시는 분들은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나 공시 그런 것들을 엄밀히 살펴봐서 내재적인 가치에 기반한 투자를 하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현상이 근절되려면 정치인 자체를 테마로 하는 종목들보다는 최근 이슈가 되는 정책들에 연계된 종목들을 찾거나, ‘내가 이 주식을 왜 사는지’, ‘투자 포인트는 무엇인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것은 투자입니까? 투기입니까?

<탐사보도팀=이효균·배정한·이덕인 기자·윤웅 인턴기자>

<구성=장윤경>

탐사보도팀 jeb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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