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가 서울 마포구 <더팩트>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카인과 아벨의 비극 이후 인간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다. 경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 해에 국내에서 범죄 162만여건이 발생했다. 이중 2만6000여건이 강력범죄인데 특히 살인사건의 검거율은 100%에 이른다. 경찰 프로파일링의 발전이 한 몫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구미제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을 듯 했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이 지난해 비로소 밝혀진 것도 프로파일링의 승리로 평가받는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프로파일러가 수십명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여명기를 열어젖힌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의 힘이 컸다. 수사권 개혁으로 경찰 역사상 최대의 권한을 갖게된 새해, <더팩트>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를 초대했다. <편집자주>

21년 전 최초 발령…27년 8개월간 현장 누벼

[더팩트ㅣ김세정·송주원 기자]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형사기동대 순경 공채로 경찰세계에 입문했던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그 무렵 전쟁에 투입됐다. 매일같이 조직폭력배를 잡으러 다니던 그는 약 10년 후,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됐다.

과학수사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우연한 기회에 받게 된 지문감식 교육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경찰에 입문한 게 1989년 8월이고, 2017년 4월30일에 퇴직했으니까요. 총 27년 8개월이네요."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더팩트> 편집국에서 만난 권일용 교수는 현장을 뛰던 기억을 담담하게 떠올렸다.

-형사기동대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는데 과학수사는 어떻게 접했나.

형사기동대를 할 때는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무렵이다. 그때만 해도 과학수사는 인기 있는 부서도 아니었고, 과학이 수사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막 태동하던 무렵이랄까. 그때는 증거물을 수집하는 것도 어려웠다. '과학적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어디 배울 데가 없을까'해서 시작한 게 CSI(과학수사대)다. CSI가 되고 나서 실적이 좋았다. 지문채취를 해서 절도범을 검거하다 보니까 특별승진도 했다. 그러니까 위에서 '너 그냥 그거 계속해'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해서 현장에 다니게 됐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7, 8년을 범죄현장에 낮이든 밤이든 계속 갔다.

-프로파일러는 어떻게 처음 시작한 건가.

범죄현장에 계속 가다 보니까 범죄자의 행동이나 심리에도 상당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증거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것에서 '왜 여기서 이 증거물이 나오게 됐을까'를 생각하면서, 새로운걸 보게 된 거다. 그런 의구심이 생기던 차에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직제개편을 했다. 한국에서도 '프로파일링'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제가 현장에서 제일 오래 있었고, 또 실적도 괜찮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네가 현장 경험이 많으니까 한번 해봐'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다. 그때가 30대 중반이었으니까 나이도 어렸다. 2000년 2월9일에 처음 발령받았어요. 그때 우리 경찰에 공식 프로파일러가 처음 탄생했다.

권 교수는 2000년 2월 9일 한국 경찰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됐다. /남윤호 기자

-1호 프로파일러라는 부담감이 상당했을 듯 하다.

범죄현장을 재구성한 다음에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의 프로필을 만드는 게 프로파일러다. 그다음에 체포되면 면담하고, 자백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프로파일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막연히 심리학책을 가지고 공부하기보다는 범죄자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베이스 없이 체포된 범죄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아침에 보면 전국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연쇄성이 있는 범죄자, 예를 들면 20, 30차례 이상 강도를 했다거나 이런 사람이 체포되면 그 경찰서를 찾아가서 만났다. '넌 어떻게 살았고, 왜 범죄를 저질렀나' '증거인멸은 어떤 방식으로 했냐' 이렇게 물어보고 다녔다. 그게 50명, 100명이 넘어가니까 유형마다 다른걸 알게 됐다. 그런 방식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간 게 프로파일러 초창기였다.

프로파일러가 되고 나서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심리학 공부하고, 석박사까지 했다. 수업 있는 날에는 강의 듣고 그랬는데, 힘들기보다는 재밌었다. 왜냐하면 프로파일러로서 범죄자를 만나기 시작했지 않나. 이 사람들이 가진 행동이나 생각이 이런 기제에서 비롯됐구나 이런것을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공부하기가 좋았다. 그간 가졌던 생각과 공부가 연결되니까. 흥미로웠다

-국내 유일한 프로파일러였는데 업무가 힘들진 않았나.

힘든 줄은 몰랐다. 왜냐면 힘들다,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으니까. 결과론적으로 보면 지나온 세월이 힘들다고 평가하는데 그 당시에는 힘든지 몰랐다. 눈뜨면 나가고, 새벽에 전화 오면 나가고. 저는 혼자니까 팀이 없으니까, 당직, 일근, 비번 이런 구조가 아니었고, 그냥 연락 오면 갔다. 어디에 사건이 발생했으니 오라고 해서 가면 7, 8시간 현장감식 하는 거지. 발자국이 어떤 방식으로 났고, 침입 방법은 뭐고, 이런 걸 보고 있는 거다. 그런 다음에 시신에 난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서 검시관하고 영안실을 같이 간다. 같이 보고 나서, 마지막에 보고서 작성하고, 하나의 기초 브리핑 자료를 만든다. 집에 있다가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거리가 멀거나 못 찾거나 하면 현장에 늦게 도착할 때가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내비게이션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옛날에 서울 강동구에 살았는데, 한번 눈이 엄청나게 오던 날에 살인사건이 났다고 해서 왕십리에 가야 했다. 그런데 차가 못 가. 택시도 안 잡히고, 그냥 걸어갔다. 2시간을 눈맞고. 새벽에 눈 내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가야 하나, 지금 눈을 맞으면서 왜 가고 있지'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무조건 가야 됐다.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시신을 봐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매몰되서 살았다. 초집중 상태였다. 그때는 힘든 줄 몰랐다. 그런데 세월이 쌓여가니까 몸이 막 아프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프로파일러가 되고나서 야간대학을 다니며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남윤호 기자

-초기 프로파일링 개념이 생소해서 일선 수사팀을 설득하기도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프로파일러는 프로파일링이 끝나면 수사팀에 프로파일링해야 한다. 이 수사팀은 어떻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고, 수사팀에 직접 브리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수사지휘관한테만 분석의견을 전달해서 지시를 할 건지 이런 걸 결정해야 한다. 팀마다 성향이 다 있거든. 잘 전달하는 방식을 찾는 거다. 어떤 언론에서는 수사팀과의 갈등이 있다고 나오는데 논쟁, 토론만 있을 뿐 갈등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사관은 면식범 중에 있다고 보는데 분석하기로는 비면식범이다. 이렇게 되면 설득해서 이해시키는 게 프로파일러의 역할이다. 그럴 때 논쟁이나 토론을 한다. '너는 왜 면식범이라 생각하냐, 너는 왜 비면식범이라고 생각하냐' 이런 식으로. 이건 갈등이 아니라 집합점을 찾아 나가는 거다.

-2006년 1기 프로파일러들이 들어왔다. 1호로서 후배들에게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

저희는 문화를 따로 만들었다. 조직이 경직된 걸 깨기 위해서. 프로파일링은 안 보이는 걸 찾아내야 한다. 수사팀에서 수사하다가 더는 찾을 수 없으면 프로파일러에게 요청한다. 그런데 거기서도 똑같은 보고서를 만들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회의하고, 밤새 다시 정리하고, 현장에 다시 가보고, 재구성한다. 프로파일러들 회의할 때 보면 6, 7명이 격렬히 토론한다. 다들 기수가 있어도 선후배 할 것 없이 굉장히 자율적으로 토론한다. 지금도 유일하게 프로파일러들만 팀장이나 직급을 부르는 게 아니고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15년, 20년 차이 나는 후배들도 회의 자리에서는 '선배님 그건 아닙니다. 제 생각과 달라요'라면서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어떤 후배는 면담갔다 와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더니 구구절절한 사연을 썼다. 보통 후배들이 20대를 다 공부하는데 보냈고, 사실 어린 나이에 악독한 범죄현장을 나가는 거니까 좀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너는 경찰이고, 이런 사람을 잡아야 한다. 너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상담다녀온 것도 아니다' 이렇게 프로파일러이기 이전에 경찰인 것을 잊지 말라고 한다. 경찰이어야만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생긴다.

-면담한 범죄자가 총 몇 명인지. 자신만의 프로파일링 전략이 있는가.

퇴직할 때 공식적인 게 900명이 넘으니까 실제로는 1000명이 넘지 않을까. 프로파일러 핵심은 말을 잘해서 설득시키는 게 아니라, 말을 잘하게 만드는 거다. 그 사람이 말하고 싶은 걸 질문하는 게 프로파일러의 노하우다. 저는 대화하면서 찬찬히 물어본다. 이 사람은 외향성이 높고, 개방성이 낮구나, 신경성이 높구나, 이런 게 파악되면 거기에 맞는 질문을 먼저 한다. '너는 요새 걱정이 많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금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내 말을 들으려고 한다. 이해하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수사에서의 '라포르(Rapport)'다. 물 떠서 주고, 커피 타주고 그런 게 아니고 이 사람은 내가 최소한 변명을 해도 듣겠구나 이렇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권 교수는 후배들에게 "프로파일러이기 이전에 경찰인 것을 잊지 말아라"고 강조한다. /남윤호 기자

-어떤 사건이 가장 가슴 아팠나

모든 사건이 다 가슴 아팠다. 제가 만난 사건들 대부분이 다 강력범죄고, 다 중범죄자들인데 다 가슴 아픈 사건들이다. 사실 범죄자를 1000명 정도 만나면 내가 만난 사람인지, 안 만난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사건은 기억이 난다. 15년, 20년 지나도 어디에 무슨 사건 하면 다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어딜 지나가면 '여기 무슨 사건 때문에 왔었지'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범죄현장을 간다는 게 프로파일러 입장에서는 무엇이라도 하나를 더 보기 위해 사진을 찍듯이 머릿속에 담아야 하는 거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안 잊힌다. 제 삶이 그것이기 때문에 어릴 때 기억이 남아있듯이 사건 기억이 다 남아 있다.

-범죄 피해자의 고통이나 2차 가해를 자주 강조했다.

그래서 저는 인터뷰를 최대한 안 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더라도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한다.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는 사건 이야기를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 입장에서는 어떤 언론에서 사건을 다루면 '저거 내 가족 이야기인데' 이런 것을 본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사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진 않는다. 범죄자가 어떤 사람인가 딱 그 선에서만 이야기한다. 실제 현장에 나가면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다. 그때 가족들이 온다. 그분들이 막 오열하는 소리나 그런 고통스러운 장면을 늘 봐왔기 때문에 평생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하기가 힘들다.

-새해 경찰 권한이 강화됐다고 평가받는다. 경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후배들이라기보다는 경찰 조직 자체가 과학수사나 수사요원들이 전문화돼야 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 구축에 훨씬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 십수 년 전에 미연방수사국(FBI)이 세미나를 많이 했다. FBI가 좋은 건 딱 하나였다. 지원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지금 보면 영장 발부, 통신수사 전부 쫓아다니고, 과학수사 요원들이 자료 종합해서 지휘관이 판단하고 있잖나. 그러면 안 된다.

권 교수는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해서 인터뷰를 최대한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남윤호 기자

-최근 인공지능(AI)과 대결을 펼치는 방송에 출연했다.

인공지능하고 대결한다고 해서 모험을 조금 했다. 저 AI가 얼마나 발전했나 보기 위해서 출연했다. 제가 나가서 틀리면 후배들이나 국민에게 이미지가 안 좋아질 텐데 생각했는데 '이기고 진다'의 문제가 아니더라고. 경찰에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할 텐데 이것이 전문가를 대체한다는 생각은 지양해야 한다. 범죄자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일정한 패턴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니거든.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항상 데이터의 끝쪽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걸 찾는 게 프로파일러거든요. 인간만이 볼 수 있는 것을 보강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할 순 없지만,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한다. 동물학대, 아동학대에 공분하다가 그냥 끝나고,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건 무의미하다. 어떤 일이 왜 벌어졌고, 어떻게 벌어졌는지 알려서 미연에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치매나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실종되면 경찰부터 군, 소방까지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그런데 무작위로 찾는다. 사실 이게 특성마다 다르거든. 치매도 여러 종류가 있고, 인지능력에 따라서 다 다르다. 그런데 배경 없이 그냥 무작정 찾다 보니까 골든타임을 놓쳐서 돌아가시고 나서 찾기도 한다. 프로파일링이라는 게 프로필을 갖는 거다. 이런 유형의 프로필을 만들어서 드론에 심어서, 드론이 매핑하고, 소프트웨어 장착해서, 사람 다니는 산길을 찾아서 띄워 보내는 거다. 훨씬 더 과학적으로 수색이 되는 거다.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sejungkim@tf.co.kr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