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9일 라임자산운용 관련 비위 사건과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관련 사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결과만 검찰총장에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더팩트 DB |
'부하'나 '상급자'여부를 떠나 국민의 공복일뿐 임을 명심하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중국 송(宋)의 왕안석(王安石)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개혁가’로 꼽았다. 왕안석의 반대파 구법당은 그를 간상배(奸商輩), ‘나라를 망하게 한 무리’라고 폄하했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정신적으로 송나라 구법당을 계승하고 왕안석을 매우 배척했다.
반면 청(淸)말의 대학자이자 개혁가였던 량치차오(梁啓超)는 저서 ‘중국 6대 정치가’에서 그를 "중국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인간이자 영국의 크롬웰과 같은 불세출의 정치가라고 칭송했다.
같은 사람을 두고, 후세의 평가가 왜 갈리는 것일까. 지향점과 미래에 대한 꿈, 국민에 대한 사랑의 문제다. 모든 정부는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고 개혁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나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다.
잘못된 개혁은 정부를 망하게 할 수 있다. 정부가 잘된다고 해서 국민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은 국민 삶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후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 원천 차단, 국군기무사령부 해편(解編) 등의 과감한 개혁조치가 차례로 실행했다.
최근에는 공수처 설치법 및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 통과되며 검찰 개혁이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야당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정치 쟁점화 되면서 옆길로 빠지는 듯 한 느낌이다. 왕안석 사례의 데자뷔 같다. 구법당을 이끌었던 이는 그와 학문적 벗이던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 사마광(司馬光)이다. 사마광도 개혁을 추구했다.
그는 왕안석의 급진성과 과격성을 지적하고 백성에 대한 사랑과 불변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사마광의 개혁이 성공한 것도 아니다. 공멸(共滅)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개혁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개혁은 추동하는 힘의 문제다.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왕안석은 깨끗하고 지성이 넘치는 군자였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나만 옳다'는 고집에서 나온 것이어서 동지를 잃고 개혁도 실패했다.
개혁은 모든 계층의 지지를 받아야 성공한다. 정치투쟁으로 변질된 개혁은 추진 주체가 사라지면 사라진다. 세계사를 들여다 보면 이러한 실패의 사이클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26일 국회도 각 부처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으로 국정감사를 마무리했다. 주목을 받은 상임위는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다룬 법사위였다. 수천 명의 피해자와 1조원대 피해 규모도 보기 드문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고위 금융 관료, 검사들 이름까지 로비 대상으로 오르내려 관심을 더했다. 그러나 뇌리에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장관과의 충돌만 떠오른다. 이날 법사위 국감에서는 추 장관과 여당 의원들은 윤 총장을 공격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야당은 윤총장 편들기에 바빴다.
지난 22일 밥사위 대검찰청 국감에서 윤 총장의 '작심 발언'에 대한 앙갚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민생을 챙기거나 개혁을 논한 생산적인 질의응답이 아닌 정쟁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22일 윤 총장은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말로 추 장관의 인사와 수사지휘권 발동을 비판했다. 그동안 말을 아껴 온 총장도 인간인지라 시원하게 반격할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부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임 옵티머스 사건의 본질과는 먼 애기다. 개혁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서로 간 '깎아내리기' '흠집내기' '낙마시키기'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추 장관은 "장관은 총장의 상급자" "총장의 발언은 선을 넘은 것"이라며 반격했다. 이 역시 윤 총장의 발언에 대한 반격에 불과하다. 국감은 이들 둘의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 버린 셈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의석 수를 앞세운 거대 여당의 오만과 야당의 무능이 이들 둘의 싸움을 응원하고 부추겼다고 여겨진다. 특히 야당은 전략도 준비도 없었다. 윤 총장이 입만 쳐다봤다. 무능하고 밸도 없는 야당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추 장관도 개혁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이 됐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러 장관이 된 건 아니다. 윤 총장에 대해 여러 건의 감찰을 진행한단다. 선을 넘긴 마찬가지다. 공인이 사감(私感)을 표출한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이 개인적 감정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문제는 둘의 충돌이 ‘개혁 파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둘 사이에 ‘검찰 개혁’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무엇보다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고위공직사범죄수사처(공수처)는 단순히 공약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운명’이다. 지난해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이유도 ‘검찰 개혁’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반부패회의를 주재하며 검찰 개혁을 위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협력을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은 조국 전 장관과 윤 총장 간 충돌로 홍역을 치렀다. 진보 진영은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쳤고 보수 진영은 광화문에서 ‘조국 사퇴’를 외쳤다. 결국 조 장관이 사퇴하고 추 장관이 구원투수로 등장했지만 충돌과 갈등은 줄어들지 않았다.
개혁을 위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지혜는 필요하다. 항상 대립하고 충돌한다면 ‘개혁의 파괴성’이 높아질 개연성만 커진다. 끝은 당연히 공멸(共滅)이다. 이들 둘은 ‘부하’도‘ 상급자’도 아니다. 국민의 공복(公僕)일 뿐이다. 충돌보다 국민을 위한 개혁부터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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