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직권남용 안 되면 직무유기라도"…'투망식 기소'에 조국 측 반발
입력: 2020.10.23 13:26 / 수정: 2020.10.23 14:00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변호인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유재수 증인 채택은 철회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공소사실에 '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했다.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중대한 비위 사실을 알고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예비적 공소사실을 더하는 취지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에 조 전 장관 측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방식으로 기소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김미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 전 장관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의 공판에서 "조 전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예비적 기소를 하기로 결정했다"며 재판부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조 전 장관 등이 받는 혐의는 유 전 부시장의 감찰을 중단하고 비위를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조 전 장관이 친 여권 인사인 유 전 부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감찰 중단을 지시해, 특별감찰반 구성원들이 비위를 저지른 고위 공무원을 감찰할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같은 조 전 장관의 행동이 직무 권한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이날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검찰은 조 전 장관의 공소장을 쓰기에 앞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를 놓고 '저울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혐의의 실질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경우 직무유기가 설립하느냐에 대한 명시적 판단은 하지 않았지만,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직무유기에 대해선 공소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조 전 장관의 행동이 직무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인지, 아니면 직무를 고의로 '뭉갠' 것인지 고민하다 '남용'을 택했다는 취지다. 명시적 판단은 하지 않았지만 아예 일을 뭉갠 직무유기 혐의와, 일은 했는데 권한을 악용했다는 직권남용 혐의가 양립할 수 있을지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그 고심에 대한 확답은 이날 공판에서도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로도 예비적 기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에서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방해받을 권리가 없다'는 주장으로 부정하는 상황에서, 양립이 안 되는 직무유기 혐의로 예비적 기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비적 공소사실에 직무유기 혐의를 예비적 죄명으로 추가하는 취지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합니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의 양립 문제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 요지에 '예비적'이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등장한 이유다. 예비적 공소사실이란 주위적 공소사실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추가하는 공소사실을 말한다. 주위적 공소사실인 직권남용 혐의와 양립할 수 없으니 예비적 공소사실로 따로 떼어 놓고, 직권남용 혐의 입증이 안될 경우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 특감반원과 유 전 부시장의 소속이던 금융감독원 관계자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모두 끝난 시점,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 이유는 "피고인이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상황이라서"라고 설명했다. 애초 정식 기소한 직권남용 혐의를 부인하니 다른 혐의로도 기소해 유죄 선고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신청 취지를 밝히는 말미 이같은 검찰의 '전략'은 더 확실히 보인다.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고, 법적 평가를 직무유기로 할 것이냐 직권남용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피고인 측 주장대로 방해받을 권리가 없다면 직무유기 판단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예비적 공소를 제기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할 만한 사실이 드러난 건 아니지만 만약 방해받을 권리가 없다는 피고인 주장이 맞다면, 즉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면 판단의 공을 직무유기로 넘기고 싶다는 취지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 전 장관 측은 반발 아닌 반발을 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으로선 재판 과정에서 "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주장했더니 다른 죄를 끌고 와 또 기소가 된 마당이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검찰의 기소라는 건 굉장히 엄격한 증거에 의해 사실을 확정하고 법리를 적용해서 해야하는 것인데, A가 안되면 B로, B가 안되면 C로 한다는 '투망식' 기소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소장 변경 자체로 검찰이 피고인의 직권남용 혐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변호인은 공소장 변경 신청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법정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변호인 지적에 대한 검찰의 답변을 보면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피고인으로선 당혹스럽지만 이같은 기소 방식에 제도적 하자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예비적 기소라는 건 기존에 존재하는 제도고 항소심 변론종결 때까지 공소장 변경이 가능하다. 시기가 늦은 건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어 "직권남용 혐의 성립에 의문을 품는 차원은 아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양자 판단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기소한 것"이라며 "재판부께서 봐달라"고 했다.

박형철 전 비서관 측 역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이에 더해 피고인들이 직무를 잘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고의로 유기한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변호인은 "저희가 예비적 기소를 막을 순 없다"면서도 "특감반 감찰 결과 혐의가 확인되면 반드시 수사 의뢰, 감사원 이첩, 소속기관 이첩 중 어느 하나로 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은 없다. 사표 수리에서 끝낸 것이 적절치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직무를 적절치 못하게 한 것이지 유기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 전 부시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조 전 장관 측이 이날 관련 증거를 모두 동의하면서 철회됐다. 유 전 부시장의 증인신문은 애초 지난달 25일로 예정됐으나, 그가 항암 치료를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기일이 한 차례 연기됐다.

이날 재판부는 "(유 전 부시장이) 심각한 상태라, 짧은 시간도 아닌 증인신문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재판부께서 증인 채택을 취소한다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지만 유 전 부시장을 공개 법정에서 신문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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