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뒤늦게 속죄한 고문 수사관…피해자는 세상에 없었다
입력: 2020.10.22 00:00 / 수정: 2020.10.22 00:00
시민을 고문해 간첩 자백을 받아낸 전직 안기부 수사관이, 34년만에 위증죄 피고인으로 사법부의 단죄를 받았다. 사진은 옛 안기부 건물을 개조해 활용 중인 서울유스호스텔. /뉴시스
시민을 고문해 간첩 자백을 받아낸 전직 안기부 수사관이, 34년만에 위증죄 피고인으로 사법부의 단죄를 받았다. 사진은 옛 안기부 건물을 개조해 활용 중인 서울유스호스텔. /뉴시스

고문 범행은 공소시효 완료로 처벌 못 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간첩 조작 피해자의 재심에서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옛 안기부 수사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가 기각했다. 이 전직 수사관은 항소심에 이르러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했지만, 재판부는 "속죄하기는 이미 늦었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유석동 이관형 최병률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모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어, 구 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저지른 가혹행위 등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완성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바 있다"면서 "형사처벌의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에게 속죄를 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피해자가 2014년 11월경 사망하면서 그에게 속죄 받을 길도 영원히 사라져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당시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선처를 바라고 있으나, 피고인이 위증한 2012년 4월 당시에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시대적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구 씨는 지난달 16일 항소심 첫 재판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하며 "선배들에게 수사기법을 배우며 가혹행위를 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웠다. 당시에는 애국심의 발로로 생각했지만, 작금에 이르러 큰 죄임을 알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원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했던 검사는 "수사관 가혹행위라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원심의 양형은 지나치게 가볍다"며 항소했다. 검사의 주장에도 재판부는 "원심에서 모두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간첩 조작 피해자에게 고문 등 가혹 행위를 가해 자백을 받아낸 전직 안기부 수사관이, 피해자의 재심 재판에서 고문하지 않았다고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남용희 기자
간첩 조작 피해자에게 고문 등 가혹 행위를 가해 자백을 받아낸 전직 안기부 수사관이, 피해자의 재심 재판에서 "고문하지 않았다"고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남용희 기자

올해 77세인 구 씨는 34년 전 안기부 수사관으로 근무하며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에 연루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고 심진구 씨의 재심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 피해자 심 씨는 주사파 운동권 대부인 김영환 씨와 4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사실이 드러나 1986년 12월 영장 없이 안기부 남산 분실에 연행돼 37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안기부는 조사 과정에서 심 씨를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해 자백을 받아 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심 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심 씨는 1999년 안기부에서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폭로했고 이후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안기부 수사관들이 심 씨에게 한 고문 범행은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능했다.

2012년 4월 심 씨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구 씨는 "심 씨를 고문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또 구 씨는 이 재판에서 "심 씨가 (자신이 간첩이라고) 자백해 다툴 점이 없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구 씨 증언을 배척하고 심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심 씨의 유족은 구 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구 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지난 6월 1심 재판부는 구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1심은 "사건이 벌어진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피해자 측에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진술을 수시로 바꿔 법의 심판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 씨와 검찰 양측의 불복으로 진행된 항소심에 이른 구 씨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

고령인 점을 빌어 석방을 호소하기도 했다. 구 씨 측 변호인은 지난달 항소심 첫 공판에서 "고령의 피고인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수감생활이 상당히 어렵다"며 보석을 청구했다.

구 씨는 최후진술에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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