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양승태의 눈엣가시' 인권법연구회는 이름이 문제였다?
입력: 2020.10.21 00:00 / 수정: 2020.10.21 00:0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20일 사법농단 의혹 핵심 인물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임세준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20일 '사법농단 의혹' 핵심 인물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임세준 기자

'김명수 대법관 천거' 우려한 법원행정처의 어느 문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4년 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을 비판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계획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판사는 누구의 지시로 썼는지 기억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모임이 이름대로 '인권법'만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은 게 와해 대상이 된 이유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0일 '사법농단 의혹' 핵심 인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2016년 법원행정처에서 제2인사심의관으로 근무한 방 모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방 부장판사는 2016년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지속적으로 사법행정 정책을 비판해 양승태 대법원에 '미운털'이 박힌 법관들의 연구회로 꼽힌다.

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의 경우, 당시 대법원 역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안을 걸고 넘어지자 소속 법관을 정리해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나아가 그 모임을 폐지하려 했다는 것이 검찰의 공소사실이다.

방 부장판사가 작성한 대응방안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인사모가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던 김명수 대법원장을 이인복 대법관 후임으로 천거할까봐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당시 부장판사던 김 대법원장이 관료적인 대법관 인사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바람에 대법관 후보 물망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대응방안 문건에는 대법원이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자를 임명하는데 '태클'을 걸 만한 회원 목록이 실명으로 적혔다.

'초대 회장인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천거 됐는데 (연구회의) 핵심으로 보임, 이인복 대법관 후임 제청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가능성 높음, 연구회 회원인 OOO 부장과 OOO 판사는 이전에도 대법관 제청에 대해 코트넷에 공개적으로 글을 게시한 바 있음, 핵심 그룹에서 김명수 법원장을 대법관 후보로 천거하거나 측면에서 지지할 가능성 농후'

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사모는 폐지 방안까지 검토됐다.

'이인복 대법관 후임 제청 절차 시작 전에 폐지 필요, 인사모만의 선별적 폐지보다는 연구회 전반 및 분과 재편 차원에서 접근, 인사모만 폐지시도 시 반발 우려 → 계기와 명분 필요'

방 부장판사는 보고서 속 대부분 내용에 대해 "제 생각이 아니다"라고 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김연학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에게 문건 작성을 최초로 지시했고, 김 전 총괄심의관이 방 부장판사에게 업무를 맡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날 방 부장판사는 문건 작성 지시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어떤 경위로 문건이 작성됐는지, 문건 내용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 이날 법정에서 명확히 소명되지 못했다. 다만 방 부장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목소리에 '우려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사: (해당 문건을 제시하며)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가능성 높음", "비정상적 운영 하에 사법행정 논의들을 '인권법' 명목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게 문제입니까?

방 부장판사: 제가 문제라 생각한 건 아니고, 이런 우려점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검사는 좀 더 궁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법관 인사와 사법행정 문제에 다른 사람도 아닌 법관이 목소리를 내는 게 왜 우려되냐는 물음이다. 그러자 방 부장판사는 '인권법' 연구회가 인권법 분야를 넘어선 의견을 낸 것이 그 이유라고 추론했다.

검사: 제 질문은 비판적 목소리가 왜 문제냐는 것입니다. 사법행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하거나, 상고법원과 관련해 지지를 표명하는 건 문제되지 않습니까?

방 부장판사: 이 문제점은 제가 생각한 게 아닙니다.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지만 그런 의식이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들은 걸 정리한 거라 '왜'냐고 물으신다면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문분야 이탈'이라고도 돼 있잖아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이름으로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싶은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문제라고 제가 생각한 건 아니라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의 대법관 천거를 우려한 정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이 법정에서 나왔다. /남윤호 기자
춘천지방법원장 시절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의 대법관 천거를 우려한 정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이 법정에서 나왔다. /남윤호 기자

방 부장판사의 증언은 임 전 차장의 입장과 비슷하다. 임 전 차장 측은 국제인권법연구회처럼 전문분야를 연구하는 법관 모임 구조를 개편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 측 변호인단은 "인사모의 사법행정 논의는 전문분야를 이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정상화를 제시하는 것 아니냐"고 방 부장판사에게 물었다. 방 부장판사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고 동의했다.

임 전 차장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특정 연구회를 지목해 와해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방 부장판사도 "임 전 차장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인사적 조치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방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인사모 폐지 방안을 검토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법정에 선 방 부장판사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답한 건 아니다"라며 "거기(진술 조서) 표현이 제 표현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제 말이 그대로 녹음돼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번복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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