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올해도 포기합니다"…멀고 먼 장애인 귀성길
입력: 2020.10.01 00:00 / 수정: 2020.10.01 00:00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후 경기 고양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택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김세정 기자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후 경기 고양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택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김세정 기자

휠체어 고속버스 노선은 네 개뿐…"엄두도 못내"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올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 한다. 고향에 가려면 KTX를 타고 광주역이나 곡성역에 내리는데 역에서 고향집까지는 20~30km나 된다.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하기가 불편하고, 명절에는 평소보다 더 복잡해 귀성은 자의반타의반 포기한다.

고속버스도 타지 못 한다.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사업이 시범 운영되고 있지만, 곡성으로 가는 노선은 없다. 서울로 올라온 지 35년이 지났으나 명절에 고향집에 내려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머니에게는 전화로 추석 인사를 전한다. 권 대표는 대신 승객이 많이 없는 평일에 따로 날을 잡아 KTX를 타거나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타고 고향을 방문한다.

"기차 탈 때도(승객들 눈치가 보인다)…옆에 승객이 있는데 휠체어가 있으면 자리가 협소해지니까. 열차가 몇 량이나 되는데 휠체어 타는 공간은 한 두 군데 밖에 없다. 명절이면 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권 대표는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게 됐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늘 소외감을 느꼈고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는 "기차나 버스를 탈 때 돈을 주고 타면서도 다른 승객들 눈치를 봐야 한다. 하다못해 시내버스를 타려 해도 출퇴근 시간에 타면 눈치가 보여 힘들다"며 "더 이상 (장애인들이) 피해자나 동정의 대상이 아닌 정당한 권리자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들은 명절에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세정 기자
권달주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들은 명절에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세정 기자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29일 오후, 권 대표를 비롯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20여 명이 경기 고양시 일산 서구의 한 아파트 앞에 모였다. 이곳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산다. 이들은 국토교통부가 장애인 이동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공식발표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라며 김 장관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장애인들이 명절에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수 있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2005년 제정됐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28일이 돼서야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사업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들이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는 서울에서 부산·전주·강릉·당진 네 개의 노선을 오가는 10대다. 10월3일을 기준으로 당진행은 하루 4회가 운영되나 부산·전주·강릉행은 1~2회 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휠체어석을 예매할 수 있지만, 2~3일 전 예약을 해야 한다. 급하게 일정이 생길 땐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29일 오후, 권 회장을 비롯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20여 명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는 아파트 앞에 모였다. /김세정 기자
추석 연휴 하루 전날인 29일 오후, 권 회장을 비롯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20여 명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는 아파트 앞에 모였다. /김세정 기자

장애인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권달주 대표는 "시외버스는 일단 노선이 저와 맞지 않는다. 최소 이틀 전에 예약도 해야 한다"며 "장애인들은 약속을 정할 때 차편이 있는지부터 먼저 봐야 한다. 모레 일정까지 다 계산해서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도 휠체어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이 회장은 "당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더라도 논산까지 또 이동해야 한다"며 "명절에는 거의 못 내려가고 집에만 있는 편"이라고 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명절 이동을 "엄두조차 못 낸다"고 지적했다. 그의 고향은 전북 부안. 최 회장은 1995년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었는데 사고 이후 교통편이 없어 고향 가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버스 외에는 갈 수가 없는데 노선이 없다. 부안에는 기차역도 없고, 버스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라면서 "고향에 내려가려면 기차든, 버스든 대중교통 이용 자체를 못 한다"고 했다.

특히 집이 기차역과 인접해 있지 않다면 휠체어 탄 장애인이 명절에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소도시 같은 경우에는 더 그렇다. 휠체어 탑승 가능한 차량이 있어도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이용자가 많으면 그나마도 어렵다.

최 회장은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동을 자제해서 못 내려가기도 하지만, 해마다 이동이 어렵다"며 "가족과 만남도 어렵고, 사회활동 참여도 지장이 크다"고 덧붙였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명절 이동을 엄두조차 못 낸다고 지적했다. /김세정 기자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명절 이동을 "엄두조차 못 낸다"고 지적했다. /김세정 기자

국토교통부는 올 연말까지 '휠체어 고속버스'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노선이나 배차를 늘릴지는 미지수다. 국토부 관계자는 "투입 노선은 계속 운행을 하지만, 시범사업 결과 어떻게 할지는 봐야 알 것 같다"며 "지금은 단정적으로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비장애인들은 추석때 바리바리 선물을 들고 줄지어 고속버스에 탑승하는데, 우리 장애인들은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얼마나 비참하냐"며 명절 이동권 보장을 거듭 촉구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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