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검찰 개혁보다 '공정'이 먼저다
입력: 2020.09.22 12:33 / 수정: 2020.09.22 12:38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공정은 개혁의 과정에서부터 이뤄져야...개혁의 결과가 아니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불가(佛家)의 수행법 중에 염불(念佛)이 있다. 항상 부처를 생각하고 부처의 명호를 부르고 부처를 친견해 깨달음을 얻는 대중적 수행법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무애박을 두드리고 다니며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염불의 핵심은 실천이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염불이 공염불(空念佛)이다. 불교와 상관없이 ‘실행이나 내용이 따르지 않는 주장과 선전’에 대해서도 공염불이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공정을 37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여러분과 우리 사회의 공정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특히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밝혔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청년의 마음을 담아 정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근 청년층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은 불공정의 사례들을 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공정사회의 기반인 권력기관 개혁을 끝까지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밖에 청년층의 반감과 박탈감이 큰 병역·입학 특혜·비리, 부동산값 폭등 문제를 두루 거론하며 공정 이슈에 대한 정면 대응 의지도 드러냈다.

아들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을 하고 있다./과쳔=이선화 기자
'아들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을 하고 있다./과쳔=이선화 기자

그런데도 "솔직히 심장에 와 닿지 않는다" "공허했다" "무슨 애긴지 잘 모르겠다"라는 적지않은 국민들의 반응은 뭔지... 조국 전 법무장관과 추미애 법무장관 등 '공정 논란'을 일으킨 정부 전 현직 인사들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탓이다.

이상직 의원과 관련된 이스타 항공사 대량 해직과 기소로 결론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문제도 거론되지 않았다. 인국공 문제만 공정 이슈란 말인지..."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강조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청년층의 반감과 박탈감이 큰 병역·입학 특혜·비리, 부동산값 폭등 문제는 두루 거론하며 공정 이슈에 대한 정면 대응 의지도 나타냈다.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믿고 싶지만 실천의지를 느끼기에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공염불인지. 립서비스인지, 실제 의지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국민의힘 등 야권이 때를 만난 듯 비난을 퍼부은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힘은 다음 날인 20일부터 "말이 아닌 실행으로 입증하라"며 비판했다. 공정을 1000번 외친들 공허한 메아리이며 부조리와 비상식에 허탈해하는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조치로 공정을 입증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사가 공허해보인 이유는 이틀 뒤인 21일이 되면 다소 이해가 되지만 설득력은 없다. 대통령이 주재한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때문인 듯 하다. 만약 이날 추 장관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림은 이상해진다. 검찰 개혁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날 기념사에 '공정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추 장관이 거론되지 않아 적지않은 국민들이 의아했던 것처럼.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을 위해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권력기관 개혁을 추진해 왔다"며 "이제 남은 과제들의 완결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 의지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이 지난달 1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더팩트DB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이 지난달 1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더팩트DB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라면서 권력기관 개혁보다 하위 개념처럼 다뤄지는 것은 당혹스럽다. 나름의 정치적 계산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이달 내내 추 장관 아들 의혹 공방이 이어지고 이스타 항공사 대량 해직에다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문제도 불거졌지만 악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대통령 지지율만 해도 40% 중후반으로 동일 재임기간으로 따져 역대 대통령중 가장 높다. 여당 지지율도 총선 전 수준이다. 오히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실시한 9월 3주차(14일~18일) 주중 집계에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전 주보다 0.8%포인트 오른 46.4%였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이 같은 수치를 바탕으로 검찰 개혁 등이 더 중요하고 촉박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지 못한 듯하다. 시경(詩經)에 "인심을 얻는 자는 흥하고, 인심을 잃는 자는 망한다(득인자흥 실인자붕/得人者興,失人者崩)"고 했다. 대통령이 권력기관 개혁을 공정사회의 기반이라고 한 만큼 기반이 더 중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일방의 생각이지 전체 국민의 생각은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40% 중후반대 친여 성향 수치는 반대로 전체 국민의 50% 이상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개혁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원성은 듣지 말아야 한다. 개혁이란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개혁 의지만 갖는다고 개혁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치밀한 실행계획과 계획 간의 우선 순위의 조율이 필요하지만 그건 다른 차원이다. 먼저 하나하나의 실행계획을 진행할 때마다 국민적 동의는 필수적이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소통이라도 해야한다. 계획들이 국민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설득해야 한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개혁이 화급한 사안이라고 해도 젊은이들에게 공정을 강조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망과 한숨을 안겨준 논란의 중심에 선 인사라면 주요 부처 장관이 됐든 주요개혁의 책임자이든 가리지 말고 거론했어야 했다. 그래야 실천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산다. 크게 잘못했다. 안 한 것보다 못 한 격이 됐다. 공정은 개혁의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또 그 책임은 대통령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진에게 있다. 설령 대통령이 제외하길 주문했다 해도 못 막은 비서진은 직무유기를 했다. 만약 참모들이 거론하지 않기를 권했다면 대통령을 기만한 죄는 더욱 크다. ‘사람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개혁은 국민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혁이 힘들고 어렵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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