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약자 위한 조항…정년퇴직자 자녀 특채와 달라"[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 유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기아차 노조 조합원이던 A씨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산재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은 "'업무상 재해로 인해 조합원이 사망한 경우에 직계가족 등 1인을 특별채용한다'라고 정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아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업무상 재해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정한 것으로 중요한 근로조건에 해당하며, 노사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를 단체협약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 규정이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정년퇴직자 또는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거나 우선채용하는 합의와는 다르다"고 봤다.
대법은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등 특정한 범위의 사람에게 보상과 보호의 목적으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법질서가 예정하고 있는 수단에 해당한다"면서 "노사가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이 조항에 합의했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유족을 채용해 왔으므로 사측의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유족이 공개경쟁 채용이 아닌 별도의 절차에서 특별채용되는 점, 채용인원이 매우 적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은 또 "노사가 1990년대부터 자율적으로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켜 왔으므로 헌법 제33조에 의해 인정되는 협약자치의 관점에서도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3년간 금형세척 업무를 해오다 2008년 2월 현대자동차로 전직한 지 6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화학물질 벤젠에 노출된 탓이었다. A씨 유족들은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A씨의 자녀를 채용해줄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이후 사측이 이 협약이 법적으로 무효하다며 채용 요구를 거절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한다"며 이 단체협약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또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의 생계보장은 금전 지급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며 이 협약이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봤다.
현대자동차가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 제97조에는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였거나 6급 이상의 장해로 퇴직할 시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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