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해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무죄를 받았던 1심 판결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덕인 기자 |
재판부 "허위사실에 표현의 자유 범위 벗어나"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해 재판에 넘겨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1심 무죄 판결이 뒤집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최한돈)는 27일 오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이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문 대통령)의 청와대 인맥, 부림사건 인맥으로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다'는 표현은 (피고인이) 적시한 사실을 기초로 한 의견 또는 논평을 한 경우"라며 "전체적으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다고 주장한 것도 허위라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원사건(1981년 당시) 변호인이 아니므로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이 사실에 기초한 '피해자가 공산주의자,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 역시 피고인의 논리 비약으로 모두 허위라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해당 발언이 문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고, 표현의 자유 범위도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최 부장판사는 "단순 피해자가 부림사건 변호인이라는 사실적시만으로는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사실이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라고 논증하는 근거 사실로 적용되는 경우에는 다르다"며 "공산주의자 표현은 다른 어떤 것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발언의 중대성과 초래되는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갈등 상황 등에 비춰보면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최한돈)는 27일 오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더팩트 DB |
재판부는 "증거조사 결과에 의하면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라고 볼만한 근거는 피고인의 논리비약 주장 외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피고인이 수사한 부림사건이 불법 장기구금으로 위법하다는 점만 드러났을 뿐"이라며 오히려 부림사건 수사 과정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질서는 불법 구금 수사와 어울리지도 않고, 관용적이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동체 내의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했다. 이는 헌법 정신에도 명백히 어긋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해당 발언을 한 시점이 오래된 점, 갑작스러운 연설 요청으로 즉흥 발언을 한 점, 동일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모임에서 이뤄진 점은 양형에 참작됐다.
선고 후 문재인 대통령 측 변호인은 "오늘 판결은 명예훼손의 법리에 부합하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추권자의 의견을 재판부께서 받아들여 주신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 전 이사장은 "사법부의 판결이라 볼 수 없다"며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고 전 이사장은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보수단체 행사인 '애국시민 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낸 문 대통령을 놓고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며 문 대통령이 당시 변호인이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고 전 이사장은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보수단체 행사인 '애국시민 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낸 문 대통령을 놓고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했다. 사진은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모습. /더팩트 DB |
부림사건은 1981년 제5공화국 군사독재 정권이 통치기반을 확보하고자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한 사건이다. 공안단국이 당시 부산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없이 체포해 고문했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도 됐다.
고 전 이사장은 이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 수사 검사였다. 고 전 이사장의 주장과 달리 문 대통령은 부림사건 본사건이 아닌 재심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대법원은 사건 발생 33년만인 지난 2014년, 부림사건 피고인 5명이 제기한 재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2년이 지난 2017년 9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 전 이사장을 불구속기소 했다.
고 전 이사장은 재판 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임을 확신할 수 있는 정황이 많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1심 재판부는 "일의적인 공산주의 개념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고 전 이사장의 공산주의자란 표현이 허위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은 항소했다.
검찰은 지난 6월 2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고 전 이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