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원 이어 노정희 대법관 증인으로…"행정처 연락은 받아"[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동원 대법관에 이어 현직 대법관으로선 두번째로 사법농단 재판에 선 노정희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연락을 받긴 했지만 재판 개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같은 법정에 섰던 이 대법관과 비슷한 취지 증언이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는 광주고법에서 통진당 사건 항소심 재판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2014년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을 결정한 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 위원(양형 실장) 등은 "의원직 상실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견해를 반영하기 위해 일선 재판에 개입했다. 헌재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통진당 의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의원직을 돌려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이민걸·이규진 전 실장은 사건을 담당한 법관이나 소속 법원 간부들에 연락을 취했다.
노정희 대법관은 재판 마무리를 앞둔 2016년 3월경 이민걸 전 실장, 이규진 전 실장과 연락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민걸 전 실장은 "문건을 보낼 테니 참고해달라"고 요청했고 노 대법관이 승낙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노 대법관은 이민걸 전 실장에게 법원행정처 견해가 담긴 문건을 전달 받았다는 검찰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문건을 받아 읽은 적 없다"며 "만약 그랬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규진 전 실장에게도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이미 헌재가 결정한 사안을 법원이 다시 심리할 것인지, 헌재 결정이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에 각각 다르게 영향을 줄지 등 재판의 주요 쟁점에 관한 연락이었다. 노 대법관은 "지방 근무는 어떻냐는 등 일상적 안부 인사를 나눴고,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사건은 주요 쟁점이 다르다는 식의 가벼운 얘기를 했다"면서도 "사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건 부적절하다 생각했고, (이규진 전 실장이) 먼저 사건 얘기를 꺼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기억했다.
노 대법관은 2016년 3월 3일 오후 2시께 항소심 사건 1심 재판 기록을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민걸 전 실장에게 전화를 받고 사건을 조회했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노 대법관은 "조회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민걸 전 실장 때문에 조회한 건 아닌 걸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2016년 3월 3일은 이민걸 전 실장이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통진당 사건 항소심을 맡고 있던 이동원 대법관과 식사를 한 날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대법관으로선 처음으로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대법관은 이민걸 전 실장과 식사 자리를 가진 뒤 오후 3시 30분경 항소심 사건을 조회하고, 오후 4시 50분께 1심 판결문을 조회했다. 오후 5시 11분에 1심 사건, 오후 6시 10분경에 다시 항소심 사건을 조회했다.
이 대법관의 조회내역을 조사한 검찰은 "그 전에는 별다른 거 없다가 (이민걸 전 실장과 식사한) 3월 3일 사건과 판결문을 조회했다"며 이민걸 전 실장이 식사 자리에서 재판 개입을 했는지 의심했다. 이날 노 대법관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이 대법관은 "식사와 상관없다"고 증언했다. 이어 "매년 2월말 재판부가 구성되고 월초 중요 사건 기일 지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조회 경위를 설명했다.
재판 개입은 없었다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을 숨기지 못한 건 이 대법관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법관은 식사 자리에서 이민걸 전 실장에게 '검토 문건'을 받아 읽었다고 시인하며 "어디까지나 참고로 읽을 것일 뿐, 판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법관은 "문건을 받았을 때 찜찜했다. 굳이 안 읽어도 되는데, 헌법 교과서에서 깊이 있는 언급이 없고 선례도 없었어서 참고할 만한 점이 있는지 보긴 했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텐데 그걸 읽어서 면목이 없게 됐다"고 심경을 전했다.

당시 대법원 수뇌부들이 가장 원치않은 판결은 '각하'로 조사됐다. 각하란 소송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의원직을 돌려달라는 통진당 의원들의 청구를 인용하든, 기각하든 본안을 판단해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논리를 공고히 하라는 것이 수뇌부들의 입장이었다.
노 대법관은 2016년 4월 헌재 결정으로 지방의회 의원직을 박탈한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같은 달 이 대법관은 헌재 결정에 따라 통진당 국회의원직은 상실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법관은 "위헌정당 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진당 소속 의원들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는지 여부에 대한 사법상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판시했다.
이날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노 대법관은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에 의견을 묻거나 한 사실 없는 독립된 판결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1일 재판 말미 이 대법관은 "증인석에서 '이 사건의 무게에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다.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재판부에 덕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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