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이태종에 징역 2년 구형…"헌법 오염"
입력: 2020.08.13 13:41 / 수정: 2020.08.13 13:41
13일 검찰이 수사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사진은 서울서부지법. /김세정 기자
13일 검찰이 수사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사진은 서울서부지법. /김세정 기자

집행관 비리 수사 저지 의혹…변호인 "악의적 허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에 수사 정보를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 대해 검찰이 "부당한 조직 보호를 위해 헌법이 부여한 영장주의 취지를 오염시켰다"며 징역 2년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김래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원장의 속행 공판에서 검찰은 같이 밝혔다.

이 전 원장은 2016년 서울서부지법 집행관사무소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관련 영장을 청구하자 영장에 포함된 수사 정보를 빼내 보고서를 작성하고 법원행정처에 보낸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장청구서 사본과 사건 관계자의 검찰 진술 내용을 파악하도록 법원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도 받는다.

검찰은 "피고인은 현직 법관 구속에 이어 '정운호 게이트'에 따른 전관비리가 불거진 상황 속에서 법원 내 집행관사무소 비위가 알려질 경우 사법부 위상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검찰 수사를 저지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이같은 범행으로 사건 관계자가 도주하고,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율을 낮추겠다며 영장을 반려하는 등 수사와 재판이라는 국가기능이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은 피의자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영장의 직무상 열람만을 규정함에도, 피고인은 법원에 영장이 청구된 걸 기화로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영장 사본과 수사기록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또 검찰은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헌법상 영장주의 취지에 반하는 주장을 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며 현직 부장판사와 법원 고위 공무원의 인권과 명예를 깎아 내리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며 "범행 동기와 결과, 범행 후 정황에 비춰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사법적 단죄가 필요하다" 강조했다.

법원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 대한 법원의 결론이 다음달 나온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이새롬 기자
법원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에 대한 법원의 결론이 다음달 나온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이새롬 기자

이 전 원장 측 변호인단은 최종변론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악의적 허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사가 불러주는대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수괴로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겁을 주는 등 규정에 위배되는 수사를 벌인 사실이 증인들에 의해 드러났다. 검찰이 제출한 대부분 증거는 절차상 위법 사유가 있어 피고인에 대한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며 "공소사실을 떠받치는 근간인 부당한 조직 보호 목적은 없었고, 입증되지도 않았다. 이같은 목적이 입증되지 못한다면 모든 사실관계는 단순 사실 나열일 뿐 범죄가 아니다"라고 변론했다.

또 "각급 법원은 법관 및 법원 공무원의 비리, 언론의 기획취재와 비판적 보도, 법원 기관별 갈등 등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해야 한다"며 "법원행정처에 보고할 근거가 없다는 검찰의 주장은 관련 예규의 취지를 무시한 것으로, 오히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언론에 알린 수사 정보들이 매우 심각한 공무상비밀누설"이라고 역설했다.

이 전 원장은 최후진술에 이르러 "공직자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국가기관 일원으로서 문제가 생기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행관실 비리가 터졌을 때 담당자에게 맡기고 보고만 받을 수 있었지만 저는 사법부 신뢰를 위해 책임을 묻고 제도적 개선점이 있으면 고쳐 나가기로 결심했다"며 "그 결과 책임 있는 집행관들에 대한 단순 징계에서 나아가 법원행정처에 제도 개선을 건의해 관련 예규가 개선되고 집행관실의 비리 구조를 원천 차단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이 전 원장 역시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과잉 수사를 언급했다. 그는 "검찰은 2016년 당시 서부지법 법관과 직원을 불러 사소한 흠을 잡아 겁 주고 위축시켜 원하는 진술을 얻어냈다. 저와 함께 지극히 정상적으로 근무한 이들이 검찰에 불려가 고초를 당하는 걸 지켜주지 못해 참담한 마음"이라며 "그들이 검찰 조사에서 받았을 두려움을 생각하면 선배로서, 당시 기관장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전 원장은 "진실의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검찰이 아무리 특정 목적을 갖고 무리수를 둔 공소사실을 끌고 가더라도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며 "현명하신 재판부께서 잘 판단해주신다면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재판해온 한 법관의 훼손된 명예와 자긍심이 아주 조금이나마 회복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신광렬 부장판사가 지난 2018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운호 게이트 당시 영장심사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신광렬 부장판사가 지난 2018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운호 게이트' 당시 영장심사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정보를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 등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수사기록은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될 공무상 비밀이 맞다"면서도 "검찰이 언론에 수사 내용을 공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검찰이 대법원에 수사 진행 상황을 직접 알려주는 경우도 많아 비밀 가치가 크지 않다"고 판시했다. 신 부장판사의 지시대로 움직여 함께 기소된 성창호·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전 원장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신 부장판사처럼 혐의를 벗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신 부장판사가 빼돌린 정보의 경우 전관 비리가 포함된 사건에 관한 정보였다. 법관 비리와 전관예우를 감시하는 법원행정처의 주요 업무에 부합한다는 점이 신 부장판사의 무죄 근거 중 하나였다. 법관 비리가 아닌 법원 내 사무원의 비리 수사 역시 수사정보의 '비밀의 가치'를 낮출 수 있을지가 쟁점이다.

이 전 원장의 선고 공판은 다음달 18일 오전 10시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 임성근 부장판사에 이어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법원의 4번째 결론이다. 이 세 사건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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