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통진당 재판 개입' 뒷배경은 부장·배석 판사 불화?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심리한 일선 재판부에 개입해 선고 기일을 미루고 판결문을 수정하도록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법원행정처의 개입은 없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8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 모 전 전주지법 기획법관(현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 행정소송 사건 재판장이던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는 주심 임경옥 판사와 상의 없이 선고 공판을 2달이나 미뤘다. 애초 2015년 9월로 예정된 선고를 11월 25일에야 내렸다. 방 부장판사는 주심이 작성한 초안에는 없던 "삼권분립의 원칙상 위헌 정당해산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의 퇴직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세 사람의 법관이 합의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한다는 합의부의 존재 이유와는 동떨어진 일이었다.
검찰은 이같은 방 부장판사의 행위 뒷배경에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개입이 있다고 본다. 법원행정처는 의원직 상실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대법원의 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방 부장판사에게 이같은 행위를 지시했다는 게 공소사실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수뇌부는 물론 방 부장판사도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이 일련의 상황은 법원행정처 개입이 아닌 재판부의 '속사정'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나왔다.
박 변호사는 검찰 주신문에서 "방 부장판사가 호불호가 명확한 편이었다. (주심보다) 배석 강모 판사를 더 신뢰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법관들이) 식당을 같이 쓰는데, 방 부장판사가 식사할 때 보면 임 판사보다 강 판사와 더 말씀을 많이 나누는 걸 보고 이같이 추론했다"고 설명했다.
방 부장판사는 왜 강 판사를 더 신뢰했을까. 변호인은 유난히 규모가 작아 식사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전주지법 구내식당에서의 일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변호인: 강 판사는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하는 등 실력 있고 업무태도가 성실했다는데, 방 부장판사도 강 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지요?
박 변호사: 제가 방 부장판사의 마음을 아는 건 아닙니다. 식당에서 말하는 걸 보고 저희끼리 추측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분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요.
변호인: 방 부장판사는 강 판사가 판결문을 잘 쓴다고 칭찬하기도 했지요?
박 변호사: 똑똑하고, 똑똑하다는 그런 말씀은 있었어요.
방 부장판사가 손댄 초안을 작성한 주심 임 판사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박 변호사는 기억했다.
변호인: (방 부장판사가) 임 판사에 대해서는 어땠나요?
박 변호사: 방 부장판사가 식당에서 강 판사하고만 주로 말하고, 임 판사와는 말씀을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변호인: 진술서에 따르면 방 부장판사는 임 판사와 밥 먹으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던데요.
박 변호사: 하아, 이 부분도 답변해야 하나요? 임 판사는 주로 식판을 보고 식사를 하는 타입이고 방 부장판사와 눈도 맞추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변호인: 같은 재판부도 아닌 증인이 느낄 정도로 공공연한 것이었나요?
박 변호사: 전주지법은 판사들이 식사하는 공간이 크지 않아요.
이날 박 변호사는 통진당 사건을 언론보도로 알았을 뿐 법원행정처에게 어떠한 지시도 받은 적 없다고 증언했다. 당시 전주지법원장도, 전주지법의 형사수석 부장판사 역시 통진당 사건을 언급한 적 없다고 했다. 이날 박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원에서의 재판 개입보다는 방 부장판사와 주심 판사의 갈등에 따른 '해프닝'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단 역시 재판장과 합의부원간 미묘한 분위기를 들어 법원행정처 차원에서의 재판 개입은 없었다고 변론한 바 있다. 지난 4월 임 전 차장의 33차 공판에서 변호인은 "당시 배석 판사는 검찰에서 '방 부장님이 고집이 있었고 배석 판사들의 상황이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아 자주 부딪혔다'고 진술했다. 주심 판사의 판결문을 방 부장판사가 고치는 일이 이례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법농단 사태의 한 축은 2015년 전주지법 행정2부에서 심리하던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의 지위 확인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법원. /뉴시스 |
다만 박 변호사는 이른바 '전주지법 공보사태'가 발생한 당일 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과 통화했다고 시인했다. 해당 판결 뒤 당시 전주지법 공보관은 기자들에게 기사 작성에 참고될 만한 자료를 배포하며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전주지법 11. 25. 선고)'라는 다소 노골적인 보고서를 첨부해 법원은 발칵 뒤집혔다.
해당 보고서에는 "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삼권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법원행정처 공보관실-전주지법 간 공보 스탠스 공유 완료"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방 부장판사가 주심인 임 판사와 논의 없이 추가한 "의원의 퇴직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구절과 겹치는 논리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는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이던 문성호 부장판사인 것으로 조사됐다.
박 변호사는 이 전 실장과 통화한 뒤 해당 사건 판결문을 조회하기도 했다. 같은 달 30일 이 전 실장에게 박 변호사는 "저희 법원 공보관이 행정처 문건 관련하여 큰 실수를 해서 실장께서도 신경쓰실 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이 전 실장이 제가 공보관인 줄 착각해 전화를 하셨다. 제가 공보관도 아니라 하고,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니 '어, 그래'라면서 그냥 끊으셨다"며 "이메일 역시 당시 법무부 장관 담화문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일전에 전화하신 걸로 봐서 (공보 사태로)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아 신경쓸 일 많겠다는 취지로 쓴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판결문을 조회한 것에도 "퇴근 무렵에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궁금해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사태를 수습하라는 지시 역시 법원행정처는 물론 전주지법 내에서도 직접 들은 적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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