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상도동 장롱 유기' 피고인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입력: 2020.08.05 05:00 / 수정: 2020.08.05 05:00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과 남성의 도주를 도운 혐의를 받는 여성의 재판이 열렸다. 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어 있는 모습. /뉴시스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장롱 속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과 남성의 도주를 도운 혐의를 받는 여성의 재판이 열렸다. 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어 있는 모습. /뉴시스

모친·아들 이어 동거녀 살해하려다 미수…"사랑해서 그랬다"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왜소한 체격의 남성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법정에 들어왔다. 수갑을 풀고 증인석에 앉은 남성은 피고인석에 앉은 여성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허모(42) 씨는 이른바 '상도동 시신 장롱 유기' 사건의 피고인이다. 모친과 열두살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장롱 속에 방치했다. 지난달 17일로 3번 재판을 치렀다.

이 재판은 피고인이 둘이다. 또 한 명은 바로 허 씨의 전 여자친구 한모 씨다. 한 씨는 허 씨의 도주를 도왔다는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는다.

이날은 증인 신분인 허 씨는 갑자기 법정에서 외쳤다,

"한○○이는 죄가 하나도 없다. 그것 때문에 내가 잠도 못 자고…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그랬다."

허 씨와 한 씨는 지난해 12월경 서울의 한 노래방에서 처음 만났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올 1월부터 모텔을 옮겨다니며 숙식했다.

문제의 1월 25일, 설연휴였다. 한 씨는 지방으로 내려갔다. 허 씨 역시 어머니와 아들이 사는 동작구 상도동 빌라로 향했다.

평소 돈 문제로 얽힌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생애 마지막 연휴를 보냈다.

허 씨는 어머니와 다투다 살해하고 아들까지 해쳤다. 죄책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시신을 비닐로 쌌다. 두리번대던 아들의 눈에 작은방 장롱이 들어왔다.

연인 한 씨의 범인도피 혐의를 입증할 증인으로 법정에 선 허 씨는 한○○이는 죄가 하나도 없다. 그것 때문에 내가 잠도 못 자고…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그랬다고 외쳤다. /남용희 기자
연인 한 씨의 범인도피 혐의를 입증할 증인으로 법정에 선 허 씨는 "한○○이는 죄가 하나도 없다. 그것 때문에 내가 잠도 못 자고…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그랬다"고 외쳤다. /남용희 기자

살해 후 한 달여가 지난 2월 20일, 허 씨는 상도동 빌라로 한 씨를 데려왔다. 시신을 장롱 속에 숨겨둔 채 둘은 위험한 동거를 시작했다.

아무리 비닐로 감쌌어도 한달이면 집안이 썩는 냄새로 진동했을 것이다. 동거한 한 씨도 냄새를 몰랐을 리 없다. 허 씨의 범행 사실을 알았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이게 검찰의 추론이다. 더구나 허 씨도 검찰의 둔 혐의가 사실이라고 조사에서 진술했다.

법정에 선 허씨는 이 모든 진술을 뒤집었다. 기가 막힌 검찰은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물었다. "한 씨가 너무 좋아서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시신 유기 사실을 알았다고 거짓말하면 재판을 받을 것이고, 대질조사나 법정에서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저라는 사람이 사실 너무 끔찍한데, 어머니 자식 죽인 사람 '다시는 안 보겠지'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도 한○○이 너무 좋으니까 필요 없는 바보 같은 거짓말을 해서 법정에서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 그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에"

허 씨의 증언에 한 씨는 눈물을 훔쳤다. 판사와 검사는 증인신문 장면까지 계산한 것이냐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증인으로 한 번 더 나올 수 있고, (이런 장면이) TV에 많이 나오지 않나요?"

4월 27일 허 씨의 형수가 경찰에 신고했고, 같은 달 30일 허 씨와 한 씨는 경찰에 검거됐다. /뉴시스
4월 27일 허 씨의 형수가 경찰에 신고했고, 같은 달 30일 허 씨와 한 씨는 경찰에 검거됐다. /뉴시스

허 씨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보고 싶다던 한 씨. 그런데 그는 한씨마저 살해하려 했다.

3월 초 시신 냄새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허 씨는 관악구 신림동의 한 씨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집에서 허 씨는 한 씨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검찰은 한 씨가 모친과 아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한다. 허 씨는 흉기도 미리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게 사랑했다는 연인을 살해하려 한 동기는 도대체 뭘까.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이어졌다.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 (한 씨가) 예뻐보이고, 예쁜 짓을 해서 죽일 마음이었다."

허 씨는 "한○○이를 못 보게 될까 봐 같이 죽으려고 했다. 죽이고 내가 죽으려고 했다"며 "사랑이 좀 틀렸다. 바보 같은 사랑인데…한○○이는 단 하나의 잘못도 없다"고 했다. 살의에 사로잡힌 순간 한 씨의 눈빛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포기했다고 했다.

'사랑해서 죽이려 했다'는 허 씨의 말에 한 씨는 눈물을 흘렸다. 이내 허 씨도 눈물을 훔쳤다.

허 씨의 도피 생활도 오래가진 못했다. 4월 27일 허 씨의 형수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형수의 연락을 받은 허 씨는 한 씨에게 "예전에 내가 때렸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고 둘러댔고, 둘은 서울 한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3일 뒤 두 사람은 경찰에 검거됐다.

이날 재판에는 한 씨의 옛 연인 A 씨도 증인석에 앉았다.

한 씨는 허 씨를 만나기 전 약 4년간 A 씨와 신림동 집에서 함께 살았다. 허 씨와 교제를 시작한 한 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A 씨는 집을 나왔다. A 씨는 "배신감을 느꼈다. 만나지 말라고 말렸다"고 했다.

A 씨는 지인으로부터 '허 씨가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도 털어놨다. 다만 당시에는 "노파심은 들었으나 농담인 줄 알았다"고 답했다.

이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 심리로 진행 중이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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