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사직서가 부담스럽지 않은 '이상한 블랙리스트'
입력: 2020.07.25 00:20 / 수정: 2020.07.25 00:20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의 24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이 사표는 썼지만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내놨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한 김 전 장관의 모습. /이새롬 기자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의 24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이 "사표는 썼지만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내놨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한 김 전 장관의 모습. /이새롬 기자

김은경 전 장관 등 속행 공판…임원들 "정권 교체마다 관례"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이 법정에서 "사표를 제출했지만 큰 부담은 없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내놨다. 정권 교체 시기마다 사표 제출이 압박이라기보다는 통과의례였다는 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김선희·임정엽·권성수 부장판사)는 2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지난 정부 때 임용된 환경부 산하 8개 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 파악해 문건으로 정리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사표를 쓴 한국환경공단 임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검찰은 김 전 장관 등이 지난 정부 때 임용된 임원이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사표를 쓰도록 압박을 넣었다고 본다. 사표 제출을 강요 당한 임원들은 임기가 남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제출하고 물러났다고 공소사실을 구성했다.

증인석에 앉은 임원들 역시 2018년 1월 임원 회의에서 당시 공단 이사장이던 전 모 씨에게 "사표 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공통된 증언을 했다. 이후 이들은 실제로 사표를 썼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압박감'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물러났는지에 대해서는 결이 다른 증언을 내놨다. 정부부처 산하 기관 임원들의 경우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사표를 써 놓고 재신임을 기다리는 관행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최 모 전 물환경본부장은 "27년간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매 정권마다 이런 부분들을 봐 왔다"며 "정권이 교체되면 재신임 차원에서 사직서 제출이 관행적으로 이뤄졌고, 전 전 이사장에게 사표 얘기를 들었을 때도 재신임 절차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 전 본부장은 지난해 6월까지 재직하다가 현재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 모 전 기후대기본부장 역시 "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제출하는 관례가 예전부터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사표를 쓴 이상 임명권자가 사표를 수리할 경우 언제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불안정함'을 느끼지 않았냐는 질문을 거듭했다. 증인들은 "사표가 수리되면 물러나야 했던 건 맞다"면서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검찰의 짐작과 실제 임원들의 심경이 엇갈린 건 사표 얘기가 나온 2018년 1월 임원 회의 분위기부터다. 1989년 4월 공단에 입사해 지난 2018년 2월 퇴직한 권 모 전 환경시설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당시 공공기관 임원 임기 2년을 마치고 연임한 지도 1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찰: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은 침통한 분위기였죠?

권 전 본부장: 기분이 좋을 리는 없죠.

검찰: 당시 증인도 사표 쓰라는 말을 듣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까?

권 전 본부장: 저는 임기가 다 지났으니까 뭐….

검찰: 사표를 제출하면 임명권자가 사표 수리하는 즉시 임원직을 잃게 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처하지 않습니까?

권 전 본부장: 전 임기 3년을 다 채웠던 터라, 임명권자가 사표를 수리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바라 보던 신 전 본부장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2018년 2월 16일 임기가 만료된 그는 10개월이 지난 12월 하순까지 근무하다 퇴임식을 치르고 물러났다.

검찰: 전 전 이사장이 사표를 제출하라고 하지 않았으면 1년 더 연임할 생각이었죠?

신 전 본부장: 개인적으로 제 나이가 정년이 됐고요. 임원으로서도 임기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습니다.

검찰: 어쨌든 증인도 연임을 신청하셨기 때문에 1년 더 근무를 하려고 했던 건 맞죠?

신 전 본부장: 그렇죠. 그런데 많은 부담은 없었습니다.

검찰: 결과적으로 언제든 사표 수리되면 나가야 했던 불안정한 지위였던 건 맞죠?

신 전 본부장: 그렇습니다.

검찰: 사직서 운운하는 회의만 없었다면 계속 연임 했겠죠?

신 전 본부장: 제가 스스로 나갈 필요는 없었죠.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찰 관계자들이 세종 환경부 청사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찰 관계자들이 세종 환경부 청사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김 전 장관 등은 새 임원을 임용하는 과정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면접 예상 질문과 정책 자료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증인석에 앉은 임원들은 "공모 절차를 거치면서 심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받은 적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전 장관 등의 다음 재판은 다음달 14일 열린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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