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공정'과 '공평'을 흔든 '인국공'사태, 정부 인식 부족 탓이다
입력: 2020.06.30 00:00 / 수정: 2020.06.30 00:00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직원 1천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청년취업층이 반발하고 나선 일명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줄임말) 사태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더팩트 DB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직원 1천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청년취업층이 반발하고 나선 일명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줄임말) 사태'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더팩트 DB

대통령 정책 의지 제대로 모른 채 추진...청년취업층에 깊은 상처,여당 일부 의원 사태악화 부채질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우리는 불공평(不公平)과 불공정(不公正)을 큰 사회문제로 인식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제한된 자원을 나눠야 했고, 공평성을 따져야 했을 것이다. 현대사회도 한정된 자원을 잘 나누거나 기회를 무리없이 골고루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이때 평등하게 나눌 건지 형평성에 맞게 분배할 건지는 다르다. 구성원이 똑같이 나누는 게 공평이고, 여러 요인을 고려해 형평성에 따른 분배는 공정이다. 이 과정에서 불만이 생기고 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된다.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 중국 노(魯)나라 재상으로 계강자(季康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논어(論語)'에 공자와 계강자가 정치를 놓고 나눴던 대화가 여러 번 나온다. 공자는 "정치란 곧 올바름이다(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말한다. "당신이 백성을 정도(正道)로 이끈다면, 누가 감히 정도를 걷지 않겠느냐(子帥以正, 孰敢不正)"고 부연한다. ‘올바름(正)’이야말로 정치의 제일 덕목이라는 충고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기회는 균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 균등은 공평사회를 지향하고 과정의 공정은 공정사회를 지향한다. 이른바 공정과 공평을 함수로 한 정의를 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1주년 요미우리 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도 "정치를 하면서 늘 마음에 두고 좌우명처럼 생각하는 것이 ‘정자정야’라는 말"이라고 말한다. '정자정야’는 문 대통령의 정치 좌우명이다. 표현은 다를지 몰라도 핵심 내용은 같다

문대통령의 이들 발언과 정권 출범 이후 추진한 주요 정책들도 반추해 보면 목표가 다르지 않다. 정책의 성공여부를 떠나 공정과 공평의 황금 분할이 관건이 되어왔다. 공평성을 강조하다보니 공정성이 흔들리고, 공정성을 강조하면 공평성이 무너질 우려가 생기면서 정책 집행에 혼선이 생겼다.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를 근간으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대표적이다. 일자리 늘리기 정책도 마찬가지다.

적폐청산도 첨예한 진영논리에 함몰되면서 숭고한 본 뜻이 일부 퇴색됐지만 목표는 다름 아닌 공정과 공평이 근간이다. 최근들어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도 얻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과정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고, ‘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도 비슷한 설명이지만 다만 ‘공정이 공평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녔다는 첨언과 함께 공정은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 즉 윤리적 판단을 수반하는 개념이라고 부연한다. 공정은 분배(기회), 과정, 가치 판단 등을 할 때 올바르게 사용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공평은 파이의 분배에 있어서 산술적으로 동일한 분배를 하고자 할 때 쓰이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 정책 의지 제대로 모른 채 추진...청년취업층에 깊은 상처,여당 일부 의원 사태악화 부채질[더팩트 | 국회=남윤호 기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불공정 채용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 정책 의지 제대로 모른 채 추진...청년취업층에 깊은 상처,여당 일부 의원 사태악화 부채질

[더팩트 | 국회=남윤호 기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불공정 채용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청년 취업층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공사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온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공정과 공평의 적절함이 부족해 빚은 참사라고 본다. 일부 여당의원들의 공정과 공평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한 몫 했다. 젊은 취업층이 주장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찬성하나 채용 과정은 한치의 오차 없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진행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표현이 다소 과격해 보일 수도 있으나 엄청 어려워진 청년 취업난 때문에 직장다운 직장을 얻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으로 언론이 살짝 부추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취업할 만한 일자리가 없어도 너무 없어 당사자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논란은 이미 예고됐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이 회사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소식을 접한 청년 취업층들은 "저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해 가며 도전하는데, 쉽게 취업한 비정규직이 어느 순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누가 애를 써서 정규직을 준비하겠느냐"는 쓴소리가 적지 않았다. 침묵하고 있는 전국의 다수 청년취업층의 속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특히 공공기관의 채용은 더욱 공평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일자리조차 없는 마당에 응시 기회마저 박탈하지는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다. 공사측과 일부 여당인사들이 직종에 따른 연봉의 차이로 합리화 하려는 것은 본질을 제대로 못 보고 오히려 기름을 붓는 격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환경미화원 채용만 해도 해를 거듭할수록 고학력자 비율이 증가하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런 애길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실망스럽다. 육체적으로 힘든 업무지만 신분 보장 및 경제적 안정성만으로도 이곳의 경쟁도 수백대의 일을 넘어서는 사실이 잘 대변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당사자가 자신의 가족 중 한명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들의 주장이나 호소는 취업여부를 떠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자 바람이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취업희망자들이 취업게시판을 보고 있다./더팩트 DB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취업희망자들이 취업게시판을 보고 있다./더팩트 DB

조국이 민주사회의 기본인 공정하고 공평한 절차 준수라는 최소한의 믿음마저 저버리려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는 왼쪽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의 임금이 오른쪽 바퀴를 다는 정규직 절반인 것을 모른 척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장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장 정확하게 작동하지만 정부의 의욕만으로 해결되는 간단한 사안은 결코 아니다.

공정은 자연의 잣대요, 공평은 인간의 잣대다. 공평은 공정이 뒷받침될 때 빛난다. 공정이 기울면 공평도 기운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의 정의가 상대의 부정의(不正義)가 될 수도 있다.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정만 말해서는 안 된다. 공평도 동시에 말해야 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은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라고 경고한다.

목전의 안일에만 취해서 앞으로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바로 큰 우환이 닥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번을 계기로 공정과 공평을 다시 한번 새기고 보다 사려깊은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일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라도 순서를 빼 먹거나 무시한다면 마무리할 수가 없다. 최근 정부 여당은 모든 일에서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야당과의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도 그래 보인다. 모를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뽑아 올린 실수는 다신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가 오히려 벼를 죽게 한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교훈을 잊지 말길 기대한다. 맹자(孟子)가 급하게 서두르거나 억지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한 내용이다.

공평한 사회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먼저 사회 구성원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탕 위에 각자의 능력 차를 메울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과정은 공정하게 추진하되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책임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은 이 같은 자세에서 비롯된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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