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대법원장 보필이 재판개입이냐"…전직 법관의 항변
입력: 2020.06.24 00:00 / 수정: 2020.06.24 00:00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임종헌 51차 공판…통진당 문건 전달한 연구관 증언대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와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송 관련 문건을 주고 받았던 전 재판연구관이 법정에 나와 "재판연구관으로서 대법원장을 보필하기 위한 직무 수행이었고, 부당한 지시는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1차 공판에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을 지낸 전 부장판사 김모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김 전 부장판사는 2016년 헌법재판소(헌재) 정당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통진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관련 문건을 법원행정처에게 전달받아, 당시 수석재판연구관이던 유해용 변호사에게 건넸다.

공소장에 따르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등은 의원직 상실 여부는 오로지 대법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이 소송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전원합의체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정치·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을 주로 담당한다.

검찰은 전원합의체 회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사법행정권 실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방안 검토 및 보고서 작성을 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고 본다. 심의관들이 작성한 문건은 재판연구관을 통해 대법원 내부로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위법·부당한 지시를 해 심의관과 연구관들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재판의 증인인 김 전 부장판사는 2016년 5월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 실장)에게 "이 상고사건이 대법원장님 및 법원행정처 처장님, 차장님의 관심 사안이니 향후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 등을 결정함에 있어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김 전 부장판사는 당시 총괄재판연구관 민모 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상고사건은 대법원장이 관심을 갖는 중요 사건이니 위 사건의 진행 경과 등을 잘 챙겨보고 신건연구관이 지정되면 즉시 제게 알려 달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이 일련의 과정을 재판상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지시로 봤지만 김 전 부장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이 민 전 연구관에게 이같은 이메일을 보낸 경위를 묻자 김 전 부장판사는 "대법원장 관심 사건이라니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건연구관에게 문의해 내용을 숙지하고 진행과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직무상 책임 수행"이라고 대답했다.

김 전 부장판사가 민 전 연구관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법리 검토해 적절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다. '통진당 사건에서 적절한 방향은 어떤 의미냐'는 검찰의 질문에 김 전 부장판사는 "아까 표현한대로, 대법원장을 보필해야 하는 입장에서 직무상 역할을 다 하려 노력했다는 것 같다(노력하자는 의미인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이 전 실장에게 법원행정처 문건 파일과 함께 검토 지시를 받고 "취지대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검찰이 해당 이메일을 제시하며 '재판상 독립이 엄격히 보장돼야 하는 재판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외부 의견을 전달받는 것에 부정적이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김 전 부장판사는 "재판부와 재판연구관은 다르다. 이 문건이 재판 업무에 관여하기 위한 취지로 작성됐다면 부적절하지만, 많은 자료를 받아봐야 하는 연구관으로서는 제 업무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관점에서 날을 세울 입장도 아니었고, 저런 지시가 왔을 때 공손히 해야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답변했다. 이어진 '예의를 갖춘다는 차원이었느냐'는 질문에는 "네"라고 잘라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린 혐의 등을 받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린 혐의 등을 받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검찰 조사에서 김 전 부장판사는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지, 소부가 심리할지는 대법원에서 하는 일인데 법원행정처에서 의견을 전달한 건 부적절하다"며 "대법원 보좌한다는데 (지시를)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렵고 곤혹스러웠다"는 취지로 진술했었다. 법정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김 전 부장판사의 답은 조금 달라졌다.

검찰: 법원행정처의 구체적 검토 의견을 받았을 때, 법원행정처의 도 넘은 재판 관여 형태에 항의하고 관련 문건을 폐기하는게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하지 않으셨습니까?

김 전 부장판사가 망설이는 사이 변호인은 "증인의 의견을 묻는 유도성 신문"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증인의 진술을 다시 확인하는 취지의 신문은 유도신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윤종섭 부장판사: 재판장 판단은, 유도신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신문사항 중 "법원행정처의 도를 넘는 재판 관여 형태", 이 부분은 정정이 필요할 듯 합니다.

검찰: 다시 묻겠습니다. (통진당 사건) 상고심 절차 진행에 관한 구체적 검토 의견을 받았을 때, 유해용 당시 수석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해 검토할 게 아니라 그와 같은 행태에 항의하고 문건을 폐기하는 게 재판의 독립을 지키고 공정을 지키는 신뢰 확보 방안이라는 인식은 하지 못하셨습니까?

김 전 부장판사: 재판 공정성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판에 영향을 받을까봐 언론보도조차도 보지 말아야한다는 것인데 부적절합니다. 대법원은 직접 심리 기능이 없어서 연구관이 직접 전화하고 탐구하는 업무도 보편화돼 있습니다. 극히 간략한 내용이고, 특별한 내용도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법원행정처 나름대로 판단해서 저희에게 전달한 거로 보였고 그냥 업무 참조자료로 삼았습니다. 상시적으로 강요했다면 부적절했겠지만, 이 정도로 부당한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진술에서 이 전 실장의 지시를 놓고 '곤혹'이라는 단어를 썼던 이유를 묻자 "환영할 만한 지시가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검찰: (사건 당시) 곤혹스러웠던 건 맞습니까?

김 전 부장판사: 곤혹스러운 건 검찰 조사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런 (검찰 진술) 조서를 쓰게 된 배경은 검찰이 더 잘 알텐데….

검찰: 아니 무슨 배경이 있습니까. 제가 직접 조사했는데요.

김 전 부장판사: "곤혹스러웠냐, 아니냐"고 물어보시기에 긍정하는 답을 했을 뿐 주도적으로 곤혹스럽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이 전 실장 요청에 따라 내켜서, 적극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참고 차원에서 이 정도(문건 검토 등)는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검찰: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내키지 않았습니까?

김 전 부장판사: 적극적으로 환영할 만한 건 아니었습니다. 직무 수행이니까요.

김 전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말미 발언 기회를 얻어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을 보필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법원장님과 대법관님 재판 업무에 대한 부분을 충실히 하려고 했다는 점을 알아주시길 바란다"며 "법원행정처 지시를, 압력을 받는다는 건 실질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수석재판연구관이나 선임재판연구관은 그런 열악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의 공판은 29일 오전 10시 속행된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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