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전 대법 심의관 "양승태 대법원, 간담 서늘했다"
입력: 2020.06.16 00:00 / 수정: 2020.06.16 00:00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임종헌 공판 증언대 선 '사법농단 문건' 작성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관련 사건 재판 법정에서 'TFT 문건 찾아보고 읽어봤는데, 너무 지나쳐서 간담이 서늘했고 뭐 이렇게까지 상세히 검토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하셨죠?" (검찰)

"네" (문성호 전 사법정책심의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 대법원 심의관이 부임 뒤 인수인계 과정에서 재판 개입이 이뤄진 정황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헌법재판소(헌재) 소장을 비판하는 기사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이는 임 전 차장이라 지목하고, '부적절한 지시'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5일 '사법농단 의혹' 핵심인물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의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2015년 2월~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을 지낸 문성호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문 부장판사의 이름은 이 사건 재판에서 자주 거론된다. 그는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 재판에서도 증인석 마이크를 잡았다. 사법농단 의혹의 한 축인 '헌재 상대 대법원 위상 강화' 관련 대부분 문건이 그의 손을 탔기 때문이다.

문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헌재 결정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이 정당 해산된지 백일도 채 안 됐을 때 대법원 사법정책실의 일원이 됐다. 정당이 해산되며 자연스럽게 소속 의원들도 그 지위를 상실했는데, 대법원 내부에서는 "헌재가 정당을 해산시킨 건 월권"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의원직 상실실은 오로지 법원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의원직을 잃은 전국 각지의 통진당 의원이 법원에 지위확인 소송을 내자 대법원도 바빠졌다. 뒤늦게라도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결정할 최고의 사법기관은 헌재가 아닌 법원이라고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위확인 행정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통진당 TFT'도 꾸려졌다. 대법원에 갓 부임한 문 부장판사는 인수인계 과정에서 통진당 TFT 문건을 보고 "간담히 서늘했다"고 기억했다.

검찰: 앞서 증인은 '최고의 법원'이라는 위상 다툼에 집착한 나머지, (통진당 TFT 문건에) 법원 판결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헌재를 공격하는 포함된 걸 보고 부적절하다고 느꼈다는데, 기억에 따라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 맞습니까?

문 부장판사: 네. TFT 문건을 처음 보고 놀란 건 사실이고… 그렇습니다.

검찰: 관련 사건 재판 법정에서 'TFT 문건 찾아보고 읽어봤는데, 너무 지나쳐서 간담이 서늘했고 뭐 이렇게까지 상세히 검토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하셨죠?

문 부장판사: 네.

'대한민국 최고의 사법기관이 어디인지'를 놓고 벌어진 대법원과 헌재의 줄다리기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서도 드러난다. 한정위헌이란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위헌 결정과 달리, 법원의 조항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일종의 '평가'였다. 법치의 마지막 보루는 대법원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양승태 대법원'으로서는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고, 사법농단 사태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런 대법원의 속사정과 달리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부는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내렸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란 특정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헌재에 판단을 구하는 절차인데, '한정위헌 취지'라는 부연 설명이 양승태 대법원의 역린을 건드렸다. 공소장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해당 재판부의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이전 결정문을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서 검색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 결정을 최초로 보고한 이는 문 부장판사였다. 해당 재판부의 결정을 보고해야할지 고민한 끝에, '논리상 한정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없어 헌재에 그대로 송부해도 된다'는 내용을 덧붙여 보고서를 작성한 뒤 직속 상관이었던 한승 전 사법정책실장, 이규진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헌재에 그대로 보내야 한다는 그의 설명과 반대로, 법원행정처는 이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코트넷에서도 결정문의 자취를 숨겼다.

해당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지난달 25일 공판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당시 재판에는 담당 재판부의 공문을 받아 휘하 실무진에게 검색 제외 조치를 지시했던 당시 전산정보관리국 정보화 심의관 이모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 전 심의관은 "전산정보관리국 자체가 법원행정처 내에서도 말단이라, 헌재 상대 위상 강화와 같은 배경은 몰랐다"며 "선례는 없었지만 판결문에 비해 결정문은 무게감이 떨어져, 전산정책상 문제가 없으면 (검색 제외를) 해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사법정책실에 있었던 문 부장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이날 그는 "법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안 맞는다"고 표현했다. 이유로는 "아무리 법원 결정에 큰 문제가 있더라도, 이미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에 연락하는 건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일선 재판부 결정을 무르게 하는 건 법관 독립성 침해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검찰: 이 때 당시에도 그렇고 이 사건 문제된 이후에도 그렇고, 당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한정위헌 취지 그대로 헌재에 보내는게 양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문 부장판사: 직권취소 후 재결정은 법리적으로도 그렇고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안 맞는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검찰: 증인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건) 대리인과 일선 법원, 법원행정처 밖에 없다고 기재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 부장판사: (직권 취소 뒤 재결정) 사실이 알려지길 꺼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 그런 취지에서 전산상 삭제를 검토 및 조치한 것입니까?

문 부장판사: 네.

문건 작성 등을 지시한 인물은 임 전 차장과 이 전 실장 등 '대법원 윗선'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문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양형실장의 지시로 헌재 관련 업무를 전담했다고 했다. 다만 "이 전 실장이 수차례 '처장님(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 지시 사항이라며 수정 지시한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문건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고 독촉도 받았다. 적어도 1번 이상 수정했다"면서도 "처장님 지시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고 답했다.

특히 문 부장판사는 서울남부지법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법률심판 제청건의 경우 "한 전 실장에게 '대법원장님 보고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사전지식 때문에 대법원장님이 의사결정한 사안이라고 저는 이해했다"고 말했다. 다만 통진당 행정소송 담당 재판부에 개입한 의혹에 대해서는 "지시 원천을 몰랐다"며 "최초 지시자, 그러니까 지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몰랐다. 제가 이 전 실장에게 따져 물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했다.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을 비판하는 취지의 기사 초안 작성을 지시한 건 임종헌 전 차장이었다고 잘라말했다. 문 부장판사가 지시를 거부하자 임 전 차장은 "일단 쓰라"며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고 한다. 문 부장판사가 작성한 기사 초안은 2016년 3월25일 '법률신문'에 "박한철 헌재소장, 거침없는 발언으로 법조계 '술렁'"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게재됐다. 문 부장판사의 초안과 유사한 내용의 기사였다.

문 부장판사는 기사 대필 지시를 거절한 이유로 "기사는 기자가 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홍보성 소재면 그러려니해도, 타 기관을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더 내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임 전 차장이 받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사법농단 의혹의 한 축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한 대법원 위상 강화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남윤호 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한 축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한 대법원 위상 강화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남윤호 기자

임 전 차장 측은 헌재 관련 업무는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남용할 '직무 권한'이 없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다. '피고인은 2015년 8월 이전까지는 기획조정실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당시 피고인에게 지시받은 사항은 거의 없지 않느냐'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문 부장판사는 "네"라고 대답했다. 이어진 '헌재를 포함한 헌법 관련 보고서는 처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보고 주체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이 전 실장이 처장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다. 차장님께 보고한다는 말은 많이 못 들었다"고 답했다.

문 부장판사가 이 전 실장의 지시로 움직였다는 취지의 증언을 수차례 한 만큼, '이 전 실장이 상급자 지시없이 독자적, 선제적으로 업무를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이에 문 부장판사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또 문 부장판사의 보고서 결재라인에 임 전 차장이 포함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변호인이 파견 법관을 통해 받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한 문건을 놓고 '이 내용 이대로 차장과 처장, 대법원장에게 보고되는 건지 증인이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문 부장판사는 "이 전 실장이 '누군가'에게 보고하려고 한 걸로 안다. 누구에게 보고했는지는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날 임 전 차장은 기사 초안 작성 지시와 관련해 문 부장판사에게 "피고인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면 뒤늦게 사과드린다"며 사과의 뜻을 직접 전했다. 그는 지난해 5월에도 "(임 전 차장이) 다짜고짜 전화하더니 역정을 냈다"고 증언한 김인철 전 외교부 법률국장에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사과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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