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기억이냐 추측이냐… 임종헌 공판 '수첩공방'
입력: 2020.06.11 00:05 / 수정: 2020.06.11 00:05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을 놓고 신문이 이어졌다. /이덕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을 놓고 신문이 이어졌다. /이덕인 기자

'사법농단 스모킹건' 이규진 업무수첩 놓고 갑론을박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김세정 기자] "이규진의 업무수첩 내용이 진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44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스모킹건'으로 불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을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이규진 전 위원은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를 조사하고, 대법원의 요구에 따라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위원은 업무와 회의 내용을 비롯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 등 상부의 지시 내용을 수첩에 자세히 기록했다.

이 전 위원의 업무수첩 내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은 수첩에서 한자로 '큰 대'자로 표기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된 것으로 봤다. '큰 대'자가 수첩 여기저기서 발견됐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물증으로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 업무수첩이 가필됐을 수도 있다며 조작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임 전 차장의 재판도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이 좌우했다.

이날 공판에는 2014년 8월부터 1년여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던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강 전 차장 후임으로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이 차장 자리에 올랐다.

검찰 측은 2015년 6월 자 업무일지 기재 내용을 제시했다. 처장과 차장 지시사항 아래 헌재 정보라며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 파견법관의 이름이 적혔다. 검찰은 이 전 위원이 실장 회의에서 최 전 법관으로부터 수집한 내부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한 기록으로 봤다. 강 전 차장도 검찰 조사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강 전 차장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전 위원의 업무수첩에 그렇게 기재돼있어 맞다고 진술했다"고 답했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반대신문에서 강 전 차장의 진술은 기억에 기초한 게 아니라 추측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증인은 경험한 사실만을 법정에서 증언해야 한다.

변호인 : "검사가 말해준 이규진 전 위원의 진술을 듣고, 업무수첩을 보고 증인이 추측한 진술인가."

강 전 차장 : "기억에 구체적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 전 위원의 업무수첩에 그렇게 돼 있어서 맞는 것 같다는 취지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업무와 회의 내용을 비롯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 등 상부의 지시 내용을 수첩에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인 기자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업무와 회의 내용을 비롯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 등 상부의 지시 내용을 수첩에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인 기자

법원행정처의 서울행정법원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개입 의혹을 놓고도 수첩은 계속 언급됐다. 검찰 측은 강 전 차장이 2015년 2월경 부임한 이 전 위원에게 통진당 소송 대응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고 본다. 강 전 차장은 "관심 갖고 연구하라는, 그런 취지였다"고 대답했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과 의원 자격상실을 결정하자 통진당 의원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법원행정처가 행정법원이 의원직 상실을 결정할 권한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고 선고하도록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이 제시한 수첩에는 강 전 차장이 이 전 위원에게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과 상담하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검찰 측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해 임종헌 기조실장이 관여한 부분이 있나"고 묻자 강 전 차장은 "관여는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변호인은 임 전 차장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증언 역시 증인의 추측이라고 반박했다. "통진당(소송 대응을 위한) TFT 관련해서 피고인(임종헌)에게 보고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강 전 차장은 "기억에 없다"고 답했다. 이에 변호인은 "그럼 피고인이 관여했다는 건 추측이냐"라고 되물었고, 강 전 차장은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고 답변했다.

강 전 차장은 '추측'을 입증하려는 변호인의 신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규진의 메모가 대체로 사실로 보여진다. 그래서 대체로 인정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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