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양승태 대법원' 당혹케 한 행정법원의 어떤 판결
입력: 2020.06.10 00:00 / 수정: 2020.06.10 00:00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공판…한승 전 부장판사 증언대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나온 한승 전 부장판사가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들의 행정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중요한 사법권 문제를 담당 재판부와 공유하자는 분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이같은 대법원 지침과 반대되는 판결이 나오자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고 기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9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의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2014~2016년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낸 한승 전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한 전 부장판사는 이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전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영장실질심사에 변호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의 공소사실은 물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관통하는 의혹 중 하나는 헌법재판소(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와 유사한 건을 심리 중인 일선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한 전 부장판사가 사법지원실장으로 있었던 시기에는 2014년 12월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전국 각지의 통진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돌려달라"며 법원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는 "헌재가 의원직 지위 여부를 판단한 건 월권이며, 의원직 상실 권한은 대법원에 있다"는 의견이 모였고, 관련 소송을 심리 중인 일선 재판부에 이같은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 전 차장을 비롯한 '양승태 코트'의 고위 법관들은 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려고 특정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 전 부장판사는 5년 전 법원행정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건 기억나지 않는다"며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그는 당시 '분위기'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검찰: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은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실장회의에서 "이 사건의 중요한 문제를 행정법원과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사건에 잠재된 중요한 사법권 문제를 행정법원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요.

한 전 부장판사: 세부적인 발언까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런 분위기는 있었던 듯합니다.

검찰: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진술에 따르면, 박 전 처장은 "헌재가 월권한 것 아니냐. 그런 걸 좀 알고 (일선 재판부가) 재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던데요. 증인의 기억에 부합합니까?

한 전 부장판사: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이같은 사정을 '좀 알고 재판했으면' 하는 대법원 바람과 달리,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헌재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를 각하했다. 법원행정처의 '분위기'도 잔뜩 얼어붙었다.

검찰: 당시 행정법원은 통진당 의원들이 낸 소송을 각하했는데, 법원행정처로서는 당혹스러웠겠는데요.

한 전 부장판사: 네.

검찰: 이규진 당시 법원행정처 양형 실장은 소각하 판결을 놓고 "제대로 알고 한 판결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던데요.

한 전 부장판사: 네. 그런 표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혹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검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실장회의가 있었습니까?

한 전 부장판사: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임 전 차장 측은 본격적인 반대신문에 앞서, 한 전 부장판사의 검찰 진술조서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한 전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와 이를 기록한 진술조서에 큰 문제점은 없다는 태도였다.

이날 변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한 전 부장판사는 제1회 조사는 7시간가량 진행됐고, 조서는 약 60쪽 분량이었다. 제2회 조사는 8시간30분 동안 진행됐으나 조서는 제1회보다 적은 55쪽이었다. 제3회 조사 역시 7시간을 넘겼으나 조서는 약 18쪽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전 부장판사는 '조사가 문답으로 이뤄진 게 맞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

한 전 부장판사는 관련 사건 재판에서 "기본적으로 제 업무가 아니라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더니, (검찰이) 기억을 환기해준 게 많다"고 밝힌 바 있다. 변호인이 해당 공판 조서를 제시하며 사실관계를 묻자 한 전 부장판사는 "저도 기억이 안 나서 메일 같은 게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고 답했다. 당시 제시된 자료가 조서에 기재됐냐고 묻자 "다 기재된 것 같다. 특별히 걸리는 점은 없다"고 했다.

다만 "헌재 관련 업무는 임 전 차장 담당이 아니었으며, 내부 회의에서도 임 전 차장이 관련 정책 방향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며 임 전 차장에게 유리한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업무 분장상 헌재 업무는 기획조정실이 아니라 사법정책실 소관이지 않느냐', '2015년 2월부터 헌재 관련 업무는 이규진 당시 양형 실장이 전담했냐' 등을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한 전 부장판사는 "네"라고 답했다. '피고인이 직접 정책 방향을 결정하던가'라는 질문에도 한 전 부장판사는 "기억에 없다"고 답변했다.

법원의 법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한정위헌' 결정을 막기 위해 일선 재판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취소하도록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이 나왔다.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은 '결재라인'에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기획조정실장은 처장, 차장과 달리 결재라인이 아니지 않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한 전 부장판사는 "네"라고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관통하는 의혹 중 하나는 헌법재판소(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와 유사한 건을 심리 중인 일선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남윤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관통하는 의혹 중 하나는 헌법재판소(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헌재와 유사한 건을 심리 중인 일선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남윤호 기자

한편 임 전 차장은 이 사건 공판 검사로 투입된 단성한 부장검사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 측과 단 부장검사는 전날(8일) 재판에서 향후 재판일정을 놓고 언성 높여 논쟁한 바 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증인신문에 앞서 "앞으로 재판장님의 기일 지정에 관한 소송 지휘에 대해서는 피고인, 변호인 모두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겠다. 어제 법정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언성을 높인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불출석하셨는데, 공개된 재판에서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피고인이 기망 행위를 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피고인 명예를 훼손한 단성한 부장검사에 대해 당시 녹음 파일이 완성되는 대로 모든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단 부장검사는 오후 2시에 속개된 재판에서는 모습을 드러냈으나, 임 전 차장과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10일 오전 10시 이어진다. 그의 선임인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증언대에 선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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