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전 국정원 간부 "원세훈 시절, 부담스러운 일 많았다"
입력: 2020.06.02 00:00 / 수정: 2020.06.02 00:00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3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3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국정원 정치공작 의혹' 항소심 공판…3차장에 징역3년 구형

[더팩트ㅣ서울고법=송주원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각계 정치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은 피고인만 11명이다. 원 전 원장을 포함해 이종명 전 3차장과 차문희·민병환 전 2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윗선'들이 한데 모였다. 지난해 1심이 마무리될 무렵 8개의 사건을 병합한 탓이다. 함께 피고인석에 앉은 간부들은 앞다퉈 '보고 라인'에 자신은 없었으며, 원장 등 일부 피고인들보다 책임이 적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1일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국고등손실)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원장과 11명의 항소심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원 전 원장 재직 당시 2차장을 지낸 민병환 전 차장 측이 신청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증언대에 선 이는 1987년부터 국정원에 몸 담아 사건 당시에는 방어팀장을 지냈던 전직 간부 A씨였다.

원 전 원장과 국정원 간부들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정치인 제압 계획 수립 △국정원 차원의 보수단체 지원 △외곽단체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설립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 2억원 및 현금 10만달러 전달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자금 추적 △어용노총 설립에 국정원 예산 지원 △'블랙리스트' 일부 방송 관계자들 업무 배제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민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이 중 박 시장 제압 문건 작성·보수단체 지원 의혹을 중심으로 A씨를 신문했다. 변호인은 A씨에게 "증인이 팀장으로 있던 방어팀은 평소에도 보수단체 관련자들과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업무를 하지 않았냐", "(보수 단체가) 칼럼 게재를 하는 등 활동은 국정원 예산으로 지원한 게 맞냐" 등의 질문을 했다. 민 전 차장이 원장 등 공범들과 공모해 벌인 범행이 아니라, 국정원의 '관행'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A씨 역시 이같은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또 변호인은 A씨의 전임자였던 B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제시하며 "B씨는 원 전 원장이 부임한 뒤 크게 두 가지 일을 했는데 하나는 보수단체 지원, 또 하나는 시국광고 게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A씨도 "제가 2011년 7월에 (방어팀장으로) 갔는데 이미 그런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 다른 간부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방어팀 현안은 다 국정원장 지시가 아니냐'는 질문에 A씨는 "저희는 지시를 국장한테만 받긴 했는데, 실무자로서 추측하자면 (국장도) 상부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며 "당시 3차장에세 직접 지시받은 적은 없다"고 답했다. A씨가 언급한 국장은 박원동 당시 국익정보국장으로, 11명 피고인 중 한 명이다.

다만 A씨는 원 전 원장이 박 시장 제압 문건 작성 등 공소사실과 같은 현안을 지시했는지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특별히 원장 지시라고 한 사안이 기억나는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A씨는 "국장이 딱 집어서 '이건 원장 지시다'라고 한 적은 없다. 저희들이 감으로 느끼기에 원장이 관심있는 사안은 '어떤 식으로든 지휘부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증인신문 말미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에게 "증인은 상당히 높은 직급이었는데, 당시 국정원 현안들에 대해 잘못됐다는 인식이 있었냐"는 질문을 받자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변론종결된 일부 피고인들도 "댓글 공작 등은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이고, 원장·차장과 달리 의사결정권이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민병주 전 단장 측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책임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국정원 댓글활동 예산집행은 피고인 부임 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졌고 피고인은 원장, 차장과 달리 의사결정권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중단시키지 않았다'며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건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차문희 전 차장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국정원 예산을 편성·집행에 2차장은 전혀 관여할 수 없다. 단순 통보성 보고를 받은 피고인에게 공범으로서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는지 평가해달라"고 역설했다. 검찰은 민 전 단장과 차 전 차장에게 원심 결심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각각 징역2년6월에 추징금 54억여원, 징역3년에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2015년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국정원) 국정감사 당시 국정원의 모습. /더팩트DB
2015년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국정원) 국정감사 당시 국정원의 모습. /더팩트DB

이날 재판에는 이종명 전 차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있었다. 검찰은 이 전 차장에게도 원심 때와 마찬가지로 징역3년, 추징금 49억여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구형 이유로는 "피고인은 국정원장을 보좌할 3차장의 지위에서 막중한 책무를 저버리고 국고 손실에 일조해 죄가 무겁다"며 "특히 원심 판단 중 책임성이 조각된 국고손실금 상당 추징금에 대해 다시 살펴봐달라"고 밝혔다.

이 전 차장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선박을 구출한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 뒤 수십년간 각지 군부대에서 근무한 장군"이라며 "국정원 3차장 부임 뒤 업무 파악에만 수개월이 걸렸는데 부임 6일 뒤 사이버외곽팀 활동에 사용된 국정원 예산 횡령의 공범이 됐다. 이 예산은 피고인이 부임하기 전년도에 이미 편성된 것이고, 피고인은 예산 사용목적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차장 역시 "38년 공직생활 중 마지막 2년을 국정원에서 보냈는데, 차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며 "잃어버린 명예에 대한 아쉬움, 명예로운 퇴직 뒤 가족과 보낼 오붓한 시간도 제게 사치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선처해주시면 국가에게 받은 은혜를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했다.

원 전 원장 등의 다음 공판은 8일 오후 2시로, 변론을 마치지 못한 피고인들에 대한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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