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김학의·윤중천 '법원의 시간' 이렇게 끝나나
입력: 2020.05.31 00:00 / 수정: 2020.05.31 00:00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4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서 <더팩트>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4월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서 <더팩트>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윤중천 성범죄 2심도 '면소'…김학의 재판 귀추 주목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14년전 '별장 성접대' 사건은 심판받을 수 있을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이어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관련 혐의도 1·2심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 사건 핵심인물이면서 공소시효 만료를 피하기 위해 구성한 공소사실이 무너지며 처벌을 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만 김 전 차관의 경우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항소심 재판이 아직 남았다. 검찰과 피고인들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는다면 14년전 별장 성접대에 대한 '법원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골든타임 놓친 검찰, 최후의 보루는 'PTSD·뇌물'

성접대가 있었던 시점은 2006~2007년, 영상이 세상에 나온 시기는 2013년 무렵이다. 갓 법무부 차관으로 부임한 김 전 차관은 "영상 속 남성은 내가 아니다"라고 적극 부인하는 한편, 논란의 책임을 지고 차관직을 내려놨다. 수사기관의 자체 수사는 물론 접대에 동원된 피해자들이 접수한 고발건 수사도 '부실 수사',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 속에 흐지부지됐다. 2018년 3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로 검찰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이미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넘은 사건의 재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증거도 부족했지만 공소시효의 벽도 높았다.

검찰은 이듬해 6월 김 전 차관에게 뇌물 혐의, 윤 씨에게는 강간치상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공소사실을 뜯어 보면 검찰이 얼마나 10여년 전 별장 성 접대 사건을 '공소제기'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윤씨는 2006~2007년 접대에 동원한 여성 A씨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쟁점은 성폭행보다 피해자가 입은 상해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였다. 해당 질환이 윤씨의 범행으로 입은 상해라, 윤씨의 마지막 범행은 '2013년'으로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윤씨에게 적용된 특수강간의 공소시효는 당초 10년이었으나, 2007년 12월21일을 기점으로 15년으로 연장됐다. 2013년 진단받은 PTSD가 인정된다면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되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2006~2007년 범행은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된다.

성 접대가 뇌물죄로 의율된 김 전 차관의 공소장 사정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뇌물죄의 경우 혐의액이 1억원 미만이면 공소시효가 10년이라 2006∼2007년 받은 성 접대는 처벌할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제3자 뇌물 혐의 1억원을 추가해 성 접대를 포함한 향응 3100만원을 하나의 죄로 구성했다. 이 1억원은 피해자 A씨가 윤씨에게 진 빚이었는데, 김 전 차관은 자신이 접대받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채무를 해결해줬다고 검찰은 봤다. 결국 두 사람의 공소사실은 각각 PTSD, 뇌물 1억이 인정되지 않으면 별장 성 접대 관련 혐의는 공소권부터 상실되는 구조였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지난 2013년 7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모습. /이새롬 기자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지난 2013년 7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모습. /이새롬 기자

◆법원은 왜 윤중천 성범죄를 처벌 못하나

검찰로서는 재판에 넘길 최선책이었지만, 성범죄 논란이 있던 사건을 뇌물죄로 구성해 각계에서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범죄 혐의가 적용된 윤씨 재판에서도 입증은 녹록치 않았다. 2013년의 상해와 2006~2007년 발생한 성범죄 사이의 인과관계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은 윤씨의 성범죄 혐의를 항소심에서도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2006년 겨울 발생한 특수강간은 면소, 2007년 2회에 걸친 성폭행은 공소기각 판단을 받았다. 2심 재판부가 그대로 유지한 1심 판단을 살펴 보면 복잡한 법리가 얽혀 있다. 공소사실상 윤씨의 범행은 2006년 겨울, 2007년 여름과 그 해 11월13일 발생했다. 이 중 2006년 범행은 특수강간죄가, 이듬해 발생한 두 건은 단순 강간죄가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2013년 진단받은 피해자의 상해가 약 7년전 범행에 따른 것인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면소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심기일전한 검찰은 피해자를 다시 법정 신문하고, 전문심리위원과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자문을 구해 보고서를 제출하며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원심 판단을 유지하며 "1심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제출된 자료와 보고서, 피해자 법정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항소심은 제1심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두 범행은 '친고죄'에 부딪혔다. 당시 강간죄는 친고죄로 분류돼 피해자가 고소·고발을 해야만 수사 및 기소를 할 수 있는 범죄였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피해자가 고소 기한인 1년을 넘겼기 때문에 "당초 부적법했던 공소 제기"라며 공소를 기각했다. 강간죄 친고죄 규정은 피해자가 PTSD를 진단받았던 2013년 폐지됐다.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피해자가 발언하는 모습./김세정 기자 20190403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피해자가 발언하는 모습./김세정 기자 20190403

◆'어쩌면 마지막' 김학의 항소심 6월 시작

뇌물죄로 의율된 김 전 차관 재판에서도 '공소시효의 벽'은 높았다. 김 전 차관의 제3자뇌물 혐의는 그에게 접대를 제공한 A씨가 윤씨에게 진 빚 1억원을 변제해줬다는 내용이다. A씨는 윤씨에게 진 빚으로 고소를 당하는 등 법적 분쟁까지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접대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김 전 차관이 윤씨에게 채무 변제를 부탁했다는 설명이다. 윤씨 역시 검찰 조사에서 A씨에게 "1억 안 받고 한 번 용서해주겠다. 학의 형 아니었으면 넌 죽었다"고 말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1억원을 안 받으면 향후 형사사건에 걸려 들었을 때 (김 전 차관이) 잘 처리해줄 것 같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씨는 김 전 차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A씨를) 고소할 때도 꼭 1억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A씨에게) 용서해 준다는 말을 한 적 없다" 등의 증언을 하며 진술을 번복했다. 핵심증인의 진술 번복에 법원은 김 전 차관의 제3자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윤씨가 몇 번 형사사건에 연루된 적 있지만, 당시 김 전 차관이 다른 지역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뚜렷한 대가를 제공할 수 없었다는 정황도 공소장의 힘을 잃게 만들었다. 뇌물죄 가액이 1억을 넘지 못하면서 공소시효의 벽은 무너졌고, 하나의 죄로 구성된 성접대도 법의 판단을 피하게 됐다. 다른 혐의들도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구속기소됐던 김 전 차관은 무죄로 풀려났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무죄 선고 4일 뒤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의 항소심 재판은 6월17일 시작된다. 지난 3월 마지막 고발건마저 무혐의 처분한 검찰로서도 공소유지에 대한 각오가 남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판례상 진술을 번복한 윤씨를 다시 법정에 부르기 어렵고, 부른다 해도 이미 진술의 신빙성은 배제됐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제3자뇌물 1억' 혐의에 대한 물증 확보가 사실상 유일한 공소유지 수단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이미 신문한 증인을 또 부르는 건 올바른 재판 진행방식이 아니다. 해당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익명의 변호사 역시 "윤씨와 피해자간 채무 관계가 절박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물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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