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의혹' 법관 "적절하지 않지만 금지된 것도 아냐"
입력: 2020.05.28 00:00 / 수정: 2020.05.28 00:00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8년 9월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한 모습. /뉴시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8년 9월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한 모습. /뉴시스

양승태 등 70차 공판…'기조실장' 이민걸 증언대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헌법재판소(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양 전 원장이 '격노'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자신도 기소된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송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하면 적절하지 않지만 금지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27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70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저지 및 와해 목적 직권남용 등 혐의의 핵심 증인인 이민걸 전 실장이 증언대에 섰다. 그 역시 해당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이 재판 피고인들과 얽힌 혐의내용에 대해 대부분 "지금 돌이켜 보면 적절하지 않지만, 위법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가 2015년 11월 판결을 선고하기 전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내부 지침을 전달했다. 앞서 통진당 의원들은 헌재 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는데, 검찰은 국회의원 상실 결정은 오로지 법원만이 할 수 있다는 '위상 강화' 수단으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재판에 개입했다고 본다.

같은 해 헌재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반발해 파업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사건을 심리 중이었다. 양 전 원장은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했다고 검찰은 본다. 조항의 위헌성을 따지는 단순 위헌과 달리 한정위헌은 법원의 법 해석이 잘못됐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이 전 실장은 '(당시) 대법원장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직접 듣거나 본 적이 있냐'는 변호인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통진당 행정소송은 대법원장이 직접 챙겼다던데'라는 물음에도 "(양 전 원장이) 관심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자신이 기소된 혐의기도 한 재판 개입에 대해서는 "한 번 읽어나 보시라는 취지로 (자료를) 담당 재판부에 드렸는데 그 당시에는 꼭 금지된 일이 아니었다"며 "허용된 행위라기 보다, 금지된 건 아니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적절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장을 찾은 모습. /더팩트DB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장을 찾은 모습. /더팩트DB

양 전 원장 등은 법관들의 연구모임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 사업 상고법원 도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소모임 '인권보장을위한사법제도소모임'(인사모)에 대해서는 중복가입 해소 조치 등을 통해 구성원을 줄이려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실장은 당시 실장 주재 회의에서 인사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냐는 검찰의 질문에 "갑자기 (인사모) 인원 수가 늘었는데 일부 회원들이 인위적으로 회원을 늘린 걸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모임이 늘어나고 회원이 많은 건 문제되지 않지만 회원을 인위적으로 불린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며 "저는 (인사모에) 젊은 법관들이 많다길래 '젊은이들 수요가 있는 연구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르러서는 2007년 정해진 예규(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에 따른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실장은 '중복가입 해소 조치는 예규에 따른 시행이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예규 집행이기 때문에 대법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안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실장은 '규정이 있었냐'는 재판부의 거듭된 질문에도 "규정은 처음부터 있었다. 다만 집행 자체는 느슨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해당 예규가 표현·결사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어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임에도 양 전 원장 등이 이를 무리하게 적용해 인사모를 와해시켰다고 본다.

양 전 원장 등의 속행 공판은 29일 오전 10시로, 이날 마치지 못한 이 전 실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진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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