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양승태 숙원' 반대한 서기호…누가 그를 압박했나
입력: 2020.05.14 00:00 / 수정: 2020.05.14 00:00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서기호 변호사의 재임용 탈락 취소소송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 실장회의에서 서 변호사가 유난히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시인했다. 2012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서기호(오른쪽) 당시 국회의원의 모습. /더팩트DB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서기호 변호사의 재임용 탈락 취소소송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 실장회의에서 서 변호사가 유난히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시인했다. 2012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서기호(오른쪽) 당시 국회의원의 모습. /더팩트DB

양승태 등 67차 공판…강형주 전 차장 증인석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서기호 변호사의 재임용 탈락 취소소송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 실장회의에서 서 변호사가 유난히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소송 개입을 지시한 이가 누구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67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서 변호사는 2012년 2월 서울북부지법 판사직을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었다. 서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하며 '가카의 빅엿'이라는 게시글을 쓴지 3개월 만에 재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 변호사는 재임용 탈락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고 2017년 3월 대법원에서 패소하기까지 긴 싸움을 벌였다.

서 변호사가 법관직에서 내려온 뒤 소송만 한 건 아니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해 4월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 됐다. 당시 법사위 화두는 양 전 원장이 사활을 건 상고법원 도입이었다. 서 변호사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검찰은 상고법원 도입을 숙원사업으로 삼고, 이를 위해 정권의 힘을 빌리려 한 '양승태 대법원'이 여러모로 눈엣가시였던 서 변호사를 압박하려고 그의 소송에 개입했다고 본다.

서 변호사는 행정소송 과정에서 판사 시절 자신의 근무평정 자료를 요청했지만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이를 모두 거부했다. 서 변호사가 긴 소송전을 벌일 시기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은 강형주 전 수석 부장판사였다. 강 전 차장은 이날 재판 증인석에 서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서 변호사의 근무평정) 문서제출명령신청서가 접수됐다는 사실은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강 전 차장에 따르면, 법관의 근무평정은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관리한다.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은 서 변호사의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에 재임용 심사 당시 서 변호사가 제출한 진술서, 서 변호사의 사건처리율 등을 전달했지만 서술식 근무평정 자료는 끝내 전달하지 않았다.

판사들은 10년마다 근무 성적 등을 평가해 재임용된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서 변호사로서는 "재임용 탈락은 부당하다"는 근거를 준비하기 위해 근무평정을 반드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법원행정처에서 자신의 근무평정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항고를 거듭했고 재판은 추후지정 상태에 들어갔다. 강 전 차장은 검찰이 이같은 내용이 담긴 기일 결과 보고서와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결정문, 서 변호사의 항고장을 제시하자 "기억은 안 나지만 (문건들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 전 차장은 검찰 조사 당시 서술식 근무평정은 외부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돼 전달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누구 의견이었냐'는 질문을 던지자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찰: 검찰 조사 당시 서술식 평정은 외부 공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서 변호사 소송 담당 재판부에게) 전달한 것 같다고 진술하셨죠?

강 전 차장: 예, 그렇습니다.

검찰: 증인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가요?

강 전 차장: 제 의견을 반영해서인지는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냥 그렇게 처리된 걸로 기억합니다.

검찰: 증인 의견이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의견과 동일했습니까? 최종의사결정자는 누구입니까?

강 전 차장: 그 부분도 제가 명확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검찰은 대법원이 서 변호사의 소송 사건을 신속히 변론종결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도 본다. 당시 법사위에 있던 서 변호사가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일 걸 우려해서다. 검찰은 2015년 3월 쓰인 '상고법원 입법 관련 국회 설득자료' 문건을 제시했다.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에 찬성 위원과 반대 위원을 분류해 준비한 '설득 전략'이 담겼다. 반대 위원들에 대해서는 각 처장과 실장들이 직접 접촉해 설득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방안도 기재됐다.

같은 해 11월 쓰인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 전략 문건'에는 의원별 맞춤 전략, 단계별 대응 전략이 서술돼 있다. 특히 반대하는 위원들은 '다각도의 특별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반대 위원들에 대해 '당근책'을 쓴 대법원이었지만, 서 변호사에게는 달랐다. 해당 문건은 서 변호사를 놓고 "주관적 감정으로 극도의 반대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음", "재임용 탈락 다투는 행정사건으로 '탄압당한 투사' 이미지 표출, 신속한 사건 종결로 국면을 전환해 설득의 주도권 확보"라고 서술했다. 검찰은 서 변호사의 행정소송 사건이 길어질수록 대법원에 탄압당한 법관이라는 이미지가 짙어지니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마무리할 대책을 세웠다고 본다.

문건을 본 강 전 차장은 "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유난히 서 변호사의 반대가 강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같은 문건 작성과 대책을 지시한 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검찰: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이나 임종헌 전 기획조정실장이 "서기호 의원이 반대한다"는 말에 공감하던가요. 증인은 공감했나요?

강 전 차장: 전반적 분위기는 그랬지만…저는 명확히 가타부타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박 전 처장이나 임 전 기조실장이 그랬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찰: 신속한 사건 종결이 무슨 의미입니까? 증인 지시에 따라 이같은 대책이 수립됐습니까?

강 전 차장: 기억에 없습니다.

검찰: 그러면 대체 누가 지시한 겁니까?

강 전 차장: 추측이라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67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의 모습. /더팩트DB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67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해 1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의 모습. /더팩트DB

박병대 전 처장 측 변호인단은 강 전 차장의 답변이 대부분 '가능성'인 점, 강 전 차장이 피의자와 참고인 신분을 넘나드는 압박 속에 검찰 조사를 받은 점을 파고들었다. '대부분 답변이 가능성은 있으나 기억에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 않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강 전 차장은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될텐데 왜 '가능성'을 굳이 덧붙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보니 제 기억에 자신이 없다.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제 기억을 믿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2018년 10여 차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던 강 전 차장은 "금년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서였나, '각하됐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매우 중요한 문서일텐데 어떻게 문건 제목도 확실히 기억 못하냐'는 변호인 질문에는 "사실, 개인적으로 기억을 들추고 싶지도 않다. 그냥 보고 말았다"고 답했다.

양 전 원장 등의 다음 공판은 20일 오전 10시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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