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수석 부장판사의 '섬세한 리더십'과 재판 개입
입력: 2020.05.13 00:00 / 수정: 2020.05.13 00:00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 재판 개입은 직무 권한이 아니라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는 임 전 차장의 모습. /뉴시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재판에서 "재판 개입은 직무 권한이 아니라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는 임 전 차장의 모습. /뉴시스

'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37차 공판…직무 권한 공방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수석 부장님들께서는 법원장님들을 보좌해 소속 법관과 직원을 배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법행정을 관장하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각 법원 수석 부장판사에게 전하는 인사말이다. '사법농단 사태' 핵심 인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수석 부장의 '섬세한 리더십' 의미를 놓고 대립했다. 검찰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위해 수석 부장이 재판을 관리·감독할 권한이 있다고 봤고, 임 전 차장 측은 어떤 형태로든 재판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2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의 37차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 기피로 8개월 만에 재개된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서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월부터 7회 공판에 걸쳐 40시간 분량의 서증조사가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쟁점별 서증조사를 마친 뒤, 이에 대한 양측 최종 의견진술이 있었다.

사법농단 사태를 관통하는 공소사실은 재판 개입이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해 법관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본다. 당시 헌법재판소(헌재)를 상대로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양 전 원장의 숙원인 상고법원 도입에 박근혜 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다.

검찰은 이 혐의내용을 놓고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직권남용죄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죄다. 이 범죄가 성립되려면 우선 '일반적 직무 권한'의 벽을 넘어야 한다. 자신의 직무 범위 안에 속하되, 권한을 남용해 상대방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범죄다.

변호인단은 임 전 차장을 포함해 공소사실상 그의 지시를 받아 재판에 개입한 수석 부장판사들의 직무에 '재판 개입'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이날 변호인단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수석 부장판사들에게 전했던 인사말을 제시했다.

"수석 부장님들께서는 법원장님들을 보좌해 소속 법관과 직원을 배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선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데 필요한 점, 불편하게 느끼는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소해야할지 세심히 살펴 법관들의 재판권 행사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힘써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변호인단은 "인사말에 구체적 재판 지휘 및 감독권 행사에 대한 언급이 없고, (수석 부장판사에게) 법관들 사이 내부 소통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재판의 잘못은 오로지 심급제도로 바로잡을 수 있다. 직무감독권을 행사하더라도 사후적 징계권 및 인사권 행사일 뿐, 진행 중인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은 없다"고 변론했다.

임 전 차장 지시를 받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 부장판사 시절, 여러 재판을 방청한 뒤 작성한 '소감문'도 제시됐다. 임 부장판사는 소감문에서 "○○ 재판부는 온화하고 위엄있는 모범적 재판 진행이 인상적이었다"며 "또 다른 재판부는 재판 당사자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그대로 구사하는 재판부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임 부장판사는 형사부 재판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가능하다면 합의부에서 단독 재판부 사건을 병합해 함께 재판을 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피고인과 변호인 의견을 들어야 하겠지만, 한꺼번에 재판을 받는게 피고인의 이익에서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장려하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수석 부장판사의 섬세한 리더십, 즉 직무 권한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법관 독립을 규정하는 한국 사법부에서 구체적인 재판 지휘와 관여는 절대 직무 권한에 속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날 검찰은 크게 △헌법재판소 상대 대법원 위상 강화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소송 개입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로 나뉘는 공소사실에서 임 전 차장의 관여도가 크다며, 증인신문을 통해 혐의를 확실히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헌재 관련 보고를 구체적으로 받았고, 법원행정처 차장이 된 뒤에는 관련 지시를 더 많이 내렸다는 사실이 관련 증인들의 진술로 명확히 인정된다"며 "통진당 소송 소장을 누구보다도 일찍 받아 들고, 심의관에게 통진당 사건 결정문을 대면 보고 받기도 했다. 통진당 소송을 헌재와의 관계 정립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시 분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피고인 주장은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내부 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와해하려 했다는 혐의에는 "문화예술을 즐기는 소모임도 있고, 산악회도 있는데 하필 사법제도를 다룬 인사모만을 문제삼은 건 양승태 사법부가 듣기 싫은 말을 (인사모가) 했기 때문"이라며 "한 심의관은 피고인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 소속 법관들은 같은 정책이라도 양승태가 하는 정책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인사모에 대한 피고인을 비롯한 대법원의 시선을 아주 적절히 지적한 증언"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해산 결정이 난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잔여재산을 대법원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분하기 위해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고 본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2월 통진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기일이 끝난 뒤 대심판정을 나서는 이정희 옛 통진당 대표의 모습. /더팩트DB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해산 결정이 난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잔여재산을 대법원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분하기 위해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고 본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2월 통진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기일이 끝난 뒤 대심판정을 나서는 이정희 옛 통진당 대표의 모습. /더팩트DB

한편 재판부는 이날 임 전 차장 측에게 2015년 6월 당시 사법정책심의관이던 문모 부장판사에게 통진당 소송 관련 보고서를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한 경위를 밝혀 달라고 지시했다. 임 전 차장은 2014년 12월 헌재가 통진당에 대해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방식으로 잔여재산을 처분하도록 관련 사건 재판부를 압박한 혐의를 받는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해당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경위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피고인이 기억 못하는 상황을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재판부에 양해를 구했다.

임 전 차장 역시 발언 기회를 얻어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긴 했지만, 검찰 조사 당시 받아본 이규진 업무일지에 제가 제시한 걸로 돼 있고 관련자들 진술을 볼 때 제가 지시한 것이 객관적 사실인 것 같아 (수정·보완 지시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며 "하지만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석명을 낼 수는 없다. 검찰은 눈만 마주쳐도 (그 사람과) 공모했다, 공동정범이라고 기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해당 석명을 구하지 않는 대신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파기환송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피고인 측 입장을 물었다. 특히 해당 판례에서 '의무없는 일'에 대한 세부적 판단을 요한 명단 송부 행위, 진행사항 수시 보고 등에 대해 성명을 내라고 주문했다. 임 전 차장의 공소사실 역시 물의야기 법관을 분류하고, 위법한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이를 보고받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인 만큼 이같은 행위가 직권남용죄가 말하는 의무없는 일인지 면밀히 살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검찰에게도 헌재에 파견된 법관이 대법원에 '정당한 메신저 역할'을 한 부분은 없는지 석명을 구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대법원은 헌재에 파견된 법관 최모 부장판사를 통해 평의(헌법재판관 전원 참석 회의) 보고서 등 내부 자료를 받아 위상 강화를 꾀했다. 이에 검찰은 "(최 부장판사는) 소통창구로서 역할을 넘어 헌재 몰래, 공개가 용인되지 않은 정보까지 전달했다는 취지"라고 답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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