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직권남용 배틀'…김기춘·안태근까지 소환된 임종헌 공판
입력: 2020.05.05 00:00 / 수정: 2020.05.05 00:00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4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6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3월 임 전 차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4일 오전 10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6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사진은 지난 3월 임 전 차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직권남용죄 입증 위한 '3개의 벽'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게 법원이 내린 무죄 선고를 놓고 "법리 오인이자 법리 혼동"이라며 정면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윤종섭 부장판사)는 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36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7회에 걸친 서증조사를 마친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임 전 차장의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죄를 놓고 입증에 자신을 보였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죄"다.

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범위에 속하는지 △권한을 남용한 행위인지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등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성립 요건이 까다로워 판례도 들쑥날쑥하고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이 줄잇기도 했다. 부하 장교에게 도시락 심부름을 시킨 군인을 놓고 헌법재판소가 "도시락 심부름은 장교의 직권에 속하지 않아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된 법관들의 주요 혐의지만, 혐의를 벗기 가장 용이한 죄명이 되기도 했다. 이날 검찰이 법정에서 판결문을 제시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사건이 그 예다.

임 부장판사는 2014년 2월~2016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수석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대법원 지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위헌적이며 징계 사유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재판 개입이라는 사법행정권이 당시 피고인에게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는 잘못됐지만, 그 행위가 임 부장판사의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않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검찰은 이 판결을 놓고 "최근 일부 하급심 재판은 직권남용 판단 체계를 잘못 이해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불법 행위를 제치고 '일반적 직권'이 있는지만 초지일관 다퉜다"며 "그 어떤 공무원의 직무 범위에도 불법 행위가 속할 수 없는데, 처음부터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결론을 정해 버렸다. 법리 오인과 법리 혼동을 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이같이 접근하더라도 임 전 차장의 행위는 "직무 권한에 속하지만 권한 남용"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수석부장이 재판을 직접 방청하며 '막말 재판'을 하거나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법관, 소송 당사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법관의 행위를 정리해 보고서로 작성하고, 해당 법관들을 불러 주의를 준 정황이 담긴 문건을 제시했다. 또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성폭력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관련 법문을 잘 숙지하고 있는지 살피고, 장기 미제 사건 재판장에게는 재판 지연 사유와 앞으로의 처리 계획을 카드 형태로 작성해 제출하게 하는 제도도 예로 들었다. 이같은 '올바른 재판 개입'은 임 전 차장이 몸담은 법원행정처를 포함해 법원장과 형사수석부장의 직무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다. 법관이 독립성을 악용해 국민의 권리를 해칠 수도 있어 수석부장 등이 이를 관리·감독하는 건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재판장의 심증과 판결문 작성에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등 공소장 속 임 전 차장의 행위는 재판부 고유의 소송지휘권을 침해한 권한 남용이라고 봤다. 이날 검찰이 제시한 예에 따르면 막말을 한 법관을 불러 주의를 주는 건 사법행정권 행사지만, "법정에서 사과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건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킨 재판장을 불러 신속한 재판 진행을 조언하면 권한 행사지만, "다음 주에 변론종결하라"고 지시하는 건 권한 남용이다.

검찰은 법관이 독립성을 악용해 국민의 권리를 헤칠 여지도 배제할 수 없어 대법원이 이를 관리·감독할 직무 권한이 있다고 본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검찰은 법관이 독립성을 악용해 국민의 권리를 헤칠 여지도 배제할 수 없어 대법원이 이를 관리·감독할 직무 권한이 있다고 본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남용희 기자

임 전 차장 측 주장도 팽팽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 임종헌을 위하여'라는 문구를 아래에 새긴 파워포인트를 스크린에 띄운 채 검찰과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변호인단은 대법원 기획조정실장·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지낸 임 전 차장은 재판에 개입할 일반적 직무 권한이 없다고 맞섰다. 법관의 독립을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국 사법부에서는 사법행정권 행사라는 명분을 가져도 재판에 개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용할 직권이 없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은 "사법행정권자에게 법관에 대한 직무감독권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은 법관 독립을 규정한 헌법과 대치되는 독단적 주장"이라며 "대법원장도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권이 없는데, 기획조정실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피고인은 형법상 직권남용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법원 판례도 적극 활용했다. 처음으로 제시된 판례는 '의무없는 일'에 대한 세부적 심리를 판시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건을 두고 의무없는 일을 엄격히 판단해야한다며 파기환송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이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현안을 검토하고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전반적 구조인데, 상관의 지시에 따라 이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건 심의관 등의 의무이자 주 업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 판례도 등장했다. 지난 1월 대법원 2부는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안 전 검사장의 인사 배치는 자신의 직권내 사안으로 '재량'이라 판단했다. 안 전 검사장의 지시를 받은 실무담당자 행위 역시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위반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검사 전보인사와 달리 심의관들의 업무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없는 점도 파고들었다.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은 심의관들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준수할 원칙, 기준,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안 검토와 보고서 작성이라는 피고인 지시가 범죄라는 명백한 이유가 없는 한, 심의관들은 국가공무원법상 상관 복종의 의무를 이행한 것 뿐"이라고 역설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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