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강력한 정황이 물증 이겼다…'관악구 모자 살해' 남편 무기징역
입력: 2020.04.25 00:00 / 수정: 2020.04.25 00:00
24일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6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40대 도예가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진은 해당 사건을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싶다
24일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6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40대 도예가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진은 해당 사건을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뱃속 토마토 신빙성 인정…유족 오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6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제33형사부(손동환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3시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도예가 조모(42) 씨의 선고 공판을 열어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조씨의 외도와 도박, 경제적 상황에 비춰 뚜렷한 범행 동기가 존재한다고 봤다. 손동환 부장판사는 "결혼 뒤에도 고정적 수입이 많지 않았던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외도를 하고 남편 또는 아빠로서 가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며 "결국 피해자인 아내 박모 씨가 이혼을 요구하며 경제적 지원을 끊자 공방 운영이 어려워졌고 예술가인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마에 빠져 배팅 비용까지 나가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공방 운영도 힘들어진 상황에 피고인의 극단적 성격이 더해져 범행 동기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또 조씨가 아내 박씨와 아들 조모 군을 잃은 뒤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인 점도 정황 증거로 들었다. 손 부장판사는 "경찰관에게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음에도 '가족이 왜 사망했냐'는 일반적인 질문 한 번 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사망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경찰이 자신을 찾을 줄 미리 알았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조씨가 아내와 아들의 장례 절차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20분 남짓 머물다 떠난 점, 피고인의 누나 역시 '왜 놀라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박씨와 조군의 위에 남아 있던 음식물 상태를 볼 때 조씨와 함께 있던 시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빙성있는 증거'로 인정했다. 박씨와 조군은 사건당일 오후 7시30분경 닭곰탕과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부검 결과 토마토 등이 소량 남아 있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법의학자들은 저녁식사를 한 뒤 조씨와 함께 있던 시간에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론했다. 손 부장판사 역시 이날 "법의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은 피해자들이 최종 식사 뒤 6시간 이내 사망했다는 점"이라며 "마지막 식사 내용물이 확정된 상태인데다 피해자들의 소화장애 등 변수도 발견되지 않은 점,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유사한 소화 정도를 보인 점에 비춰 배척하기 어려운 신빙성있는 증거"라고 역설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과 박씨의 시신이 하의는 속옷 차림이었던 점, 아들의 시신은 얼굴 부분만 베개로 가려진 점 등도 조씨의 혐의를 뒷받침한다고 봤다. 손 부장판사는 "박씨가 속옷 차림으로 살해당한 점에 비춰 몰래 들어온 사람이거나 스스럼없는 사이의 사람을 범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사망시점으로 추정되는 시간동안 CCTV에 찍힌 사람이 없고 현장에 족적이나 외부 침입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제3자 범인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중 한 명인 아들의 얼굴을 베개로 가린 점을 볼 때 피해자에 대한 범인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해자인 아내와 아들은 죽는 시간까지 피고인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나 그 마지막은 끔찍했다.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는데 피고인은 이 사건 공판에 이르기까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만 조씨가 범죄 전력이 없고 재범 가능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 유족과 친구들은 오열했다. 이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판사님이 우리 진실을 다 들어주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법정 수용 인원이 적어 지인들 일부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나만 (재판을) 들어서 미안한데 판사님이 정말, 정말 우리의 진실을 다 들어주셨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소재 다세대주택에서 아내 박씨와 아들 조군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도구와 폐쇄회로 등 명백한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많은 피를 흘렸지만 현장에 범인의 유전자가 섞인 피 묻은 손자국이나 발자국도 없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현장 감식 자료와 감정을 토대로 남편 조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검찰은 조씨가 외도를 하며 가정을 거의 돌보지 않은 점, 공방 운영비를 대던 아내 박씨가 이혼을 요구하며 지원을 끊은데다 같은 시기 도박에 빠져 돈이 필요했던 정황 등을 토대로 조씨를 재판에 넘겼다. 조씨가 물증이 없어 진범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 등을 사건전후 집중적으로 본 사실도 정황 증거 중 하나였다.

서울중앙지법 제33형사부(손동환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3시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도예가 조모(42) 씨의 선고공판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용희 기자
서울중앙지법 제33형사부(손동환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3시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도예가 조모(42) 씨의 선고공판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용희 기자

조씨는 "사건당일 집에서 함께 잠을 자다 아이의 잠꼬대에 잠이 깨 집을 나와 공방에 갔고, 그때까지 아내와 아이가 살아있었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해왔다. 지난달 결심 공판에 이르러서는 아내와 아들이 사망했는데도 담담한 모습을 보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눈물을 보이며 "최대한 눈물도 흘리지 않으려 했다. (두 사람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답했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수많은 증거에도 궁색한 변명만 하는 등 더는 인간다움을 찾아볼 수 없는 조씨에게 상응한 책임을 묻는 게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할 일"이라며 사형 선고를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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